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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수]말의 무게


[아이뉴스24 문영수기자] 말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한번 흘린 말은 온전히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발언이 갖는 파급력이 작지 않은 이유다. 기자들이 이들의 말을 취재하고 행간의 뜻을 분석하려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의 말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1일 자정 무렵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그의 발언이 게임업계를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될 모양새다. 게임업계를 농단하는 4대 세력이 있다며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비롯해 그의 측근과 측근이 일했다는 게임 언론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모 교수 등의 실명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현직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이름이 나오자 심야의 국정감사장도 발칵 뒤집혔다. 여 위원장 발언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반응부터 전혀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이라며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이날 여 위원장은 '게임판 4대 농단 세력이 있다'고 중언부언 발언했을 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여 위원장의 농단 발언이 처음 등장한 건 지난 10월 19일 열린 문체부 산하 기관 국정감사장에서다. 확률형 아이템 관련 질의가 나오자 여 위원장은 '네 박자로 농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유성엽 교문위원장이 해당 내용을 정리해 서면 제출을 요구했으나 여 위원장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31일 국정감사에서 육성으로 관련 내용을 말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면 대신 공개 발언을 택한 여 위원장의 선택은 그러나 본인을 궁지에 몰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 양상이다. 해당 발언이 나온 직후 게임판 4대 농단 세력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이 일제히 반박 입장을 신속히 내면서다.

이에 따라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친척이라는 측근과 그 측근이 재직했다는 언론사 등 여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관계부터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체육관광부도 1일 여 위원장의 발언이 전혀 근거가 없는 허위라며 사실 여부를 명확히 파악해 엄정 조치한다는 입장을 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역시 '여 위원장의 개인적 발언'이라며 선 긋기에 나선 모습이다.

여 위원장은 왜 농단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지난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 뚜렷이 박힌 단어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 뒤에서 국정을 마음껏 주무르며 부를 축적한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보도 문구 덕분이다.

이번에 게임판 4대 농단 세력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공교롭게도 여 위원장에 비판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게임 언론사의 경우 최근 게임위의 '고무줄 심의'를 비판하는 기사 보도 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으며 모 교수는 '게임계 낙하산' 인사라며 여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측근 인사 역시 국회 토론회에서 게임위의 운영 문제 등을 지적한 바 있다. 여 위원장에 비판적인 이들이 게임판 농단 세력? 이들이 어떠한 이익을 독차지했는지 증명할 근거 없이는 얼른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수세에 몰린 여 위원장이 분위기를 반전할 유일한 방법은 '스모킹 건'. 즉 결정적 증거를 내미는 것뿐이다.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오는 10일로 예정된 국정감사 전까지 여 위원장 발언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을 문화체육관광부 측에 주문한 상태다. 만약 여 위원장이 이날 납득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는 기관장으로서 자신이 꺼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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