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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뉴커런츠상 '죄 많은 소녀' 감독, 말로 쌓은 탑을 부수다(인터뷰)


사건의 원인과 결말이 쉽게 하나로 좁히지 않는 영화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장르 영화처럼 사건의 이유를 찾아가면 배신당할 거예요.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싸고 나머지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무슨 변명을 하는지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영화죠. 그렇게 오고가는 말들이 비겁하다는 걸 영화에서 봐줬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실종되지만 시체도 발견되지 않고 유서나 명확한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말'들만 무성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은 쌓이고 쌓인 말들로 규정돼버린다. 김의석 감독은 타인들이 쏟아내는 말들로 죽음의 원인과 결과가 만들어져 가는 모습을 응시하고 관찰했다. '죄 많은 소녀'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조이뉴스24가 '죄 많은 소녀'(감독 김의석)의 김의석 감독을 만났다. '죄 많은 소녀'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먼저, 영화의 출발점이 궁금했다. 김의석 감독은 "이 이야기는 과거 제가 경험한 일에서 시작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제가 소중한 친구를 잃으면서 겪었던 감정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인간 같았다.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죽음'이다.'죄 많은 소녀'의 원제도 'after my death'다. 김의석 감독은 "죽음의 시점(after)과 죽음의 소유(my)는 중의적이다. 영화의 시작이 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경민(전소니 분)이 자신의 죽음 후를 관망하는 걸 수도 있다. 동시에 영희(전여빈 분)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며 "원제에서 'my'는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여학생, 영희다. 또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들도 모두 여성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김의석 감독은 "영희의 나이대 여자아이면 더 예민하고 더 불가해 하고 더 날카롭고, 때로는 강하기도 한 모습들을 갖고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전여빈이 연기하는 영희는 경민의 자살을 부추긴 학생으로 지목된다. 그 과정에서 극의 주축을 이루며,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고발한다. 어쩌면 그 상징이기도 하다.

"영희 캐릭터를 먼저 생각했고 이 인물을 공부해 나갔더니 여성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됐어요. 여성 영화가 많지 않아서 여성이 주로 나오는 영화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건 '젠더의 구분 없는 사회'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무경계의 상태를 그리려고 했죠. 그런 해석으로 우리 사회 속 여학교를 바라본다면 좀 더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들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김의석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조사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여성에 대해) 잘못 생각했던 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영화 속 장면을 언급했다. 그는 "외부에서 사건을 마주하고 전달해주는 인물들은 다 남자다. 여성들은 그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 남성과 여성 모습을 의도적으로 담았다"며 "영화 속 사건의 표면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죄 많은 소녀'의 주인공 전여빈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전여빈의 연기는 영희의 불안한 상태를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갑게 표현해내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김의석 감독은 "출연할 배우들의 연기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 연기력은 좋았다. 배우의 이미지는 나중에 역할을 선정하는 데 작용을 했지만 1순위는 아니었다"며 "'배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배우가 내가 겪은 이야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였다"고 밝혔다.

"저는 역할 없이 캐스팅을 했어요. 모두 똑같은 대본을 봤죠. 그 캐릭터들은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 후에 제가 배역을 분배하고 제의했어요. 전여빈과는 연기 리딩은 많이 하지 않았어요. 대화를 많이 했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전여빈도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 과정에서 전여빈이 느끼는 감정이 제가 겪은 감정 상태와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전여빈이라면 '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배우 유재명은 '죄 많은 소녀'에서 김 형사 역할을 맡았다. 김의석 감독은 "유재명은 소개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너무 좋아해줬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맨 처음에 형사 역할을 더이상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한국사회다,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촌티가 난다'라고 하면서 '형사 역할을 한 번 더 하고 싶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으레 책, 드라마, 영화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면 기승전결로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이 그려진다. 하지만 '죄 많은 소녀'는 극의 흐름이 낯설고 새롭다. 영화 전체를 이끄는 사건의 원인과 결말이 쉽게 하나로 좁히지 않는다. 김의석 감독은 "모든 게 다 이유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 세상 자체가 말로 쌓은 탑처럼 느껴져요. 그런 말들이 이유와 답이 되지만 그게 또 아닐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통계가 나와요. 물론 통계가 나와야 문제 개선이 되고 자살률도 줄어들 수 있겠죠. 하지만 바보 같기도 해요. 우리가 내야 하는 답들은 그게 아닐 수 있고 훨씬 더 복잡하죠.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낚시질만 하는 영화'라고 말하는데, 저는 궁금함이 그렇게 남은 채 영화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의 죽음을 겪었을 때 타인인 친구를 이해한다는 것, 죽음 너머의 일을 가늠하고 규정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김의석 감독은 이런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배우들에게도 '특별한' 디렉션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할 때도 그랬다.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은 말이 아닌 표정 등을 트레이닝했다"며 "영화에서는 인물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시시각각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의석 감독은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영하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군대에서 영화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유없이 영화가 되게 재밌었다. 그렇게 조금씩 영화로 옮겨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첫 장편 영화다. 공개된 단편은 3개다. 그 중 '오늘은 내가 요리사'라는 재기발랄하고 귀여운 영화가 있는데 이걸로 미장센관객상을 받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죄 많은 소녀'는 김의석 감독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는 "처음이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며 "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영화가 완전히 허구여도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 더 밀착되는 부분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이 영화도 제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거의 허구"라고 느낀점을 전했다.

김의석 감독은 자신에게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의미인지 밝혔다. 그는 "아카데미 정규 과정을 졸업하고 뭔가 한계를 많이 느꼈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구나', '영화는 나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며 "그즈음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게 돼서 영화 30편 정도 봤다. 엄청 봤다. 되게 행복했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라고 느끼면서 견문이 좀 더 넓어졌다. 그리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로 관객들을 처음 만났다"며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술적 성취에 대한 목표이기도 하고 그걸 평가 받거나 칭찬 받고 응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 "영화를 만들면서 잘 못 챙겨준 스태프들이 많다. '죄 많은 소녀'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초청된 게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자긍심이 됐으면 좋겠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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