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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Feel']벤피카에서 찾은 서정원의 '잃어버린 역사'


축구 역사 박물관에 뛴 선수로 공인돼…현역 시절 계약서 도장 찍고도 못 뛰어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네? 벤피카 역사박물관에 서정원 감독이 있다고요?"

모든 것은 포르투갈 축구 환경을 잘 아는 사람의 한마디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국 축구 해외 진출사(史)에 있어 꽤 중요한 사건이었기에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고 직접 살폈더니 실제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조이뉴스24는 지난 1월 31일~2월 12일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과 광주FC의 포르투갈 전지훈련, 수원 삼성의 스페인 전지훈련을 취재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과 포르티망, 스페인 마르베야를 오가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발단은 광주의 전지훈련지인 포르티망이었습니다. 광주의 전지훈련 코티네이터인 주앙 아마랄 씨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겠다. 벤피카 축구 역사박물관에 가면 한국인이 있다"는 겁니다.

벤피카의 한국인이라니. 우리에게 알려진 벤피카는 포르투갈 최강 명문팀이자 올드 팬들에게는 에우제비우(유세비오)가 뛰었던 팀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1970년 내한해 축구대표팀 백호, 청룡팀과 연속해 경기를 가진 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지요. 포르투갈 전체로 보면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상대 등 나름대로 인연은 있지만 말이지요.

어쨌든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가서 직접 보랍니다. 궁금증이 더 커졌고 한국언론재단의 과거 기사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벤피카와 관련된 한국 인물을 알아봤지만, 워낙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아서 흑백처리 됐고 나오는 정보도 없었습니다. 다만, 수원 서정원 감독이 몇몇 언론에 흘러가는 이야기로 "벤피카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실패해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만 간단하게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마르베야로 넘어갔더니 깜짝 놀랄 발언이 서 감독에게서 나왔습니다. 서 감독은 "벤피카에서 뛰었다"는 겁니다.

서 감독의 공식 선수 경력은 1992~1997 안양, 1997~1998 스트라스부르(프랑스), 1998~2004 수원, 2005 잘츠부르크, 2006~2007 SV리트(이상 오스트리아)입니다. 벤피카가 숨겨둔 팀이라도 되는 걸까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1997년 여름 벤피카 입단테스트를 했다. 벤피카에서도 만족했고 계약서도 썼다. 프리시즌 연습경기도 뛰었고 골도 넣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 대표팀으로 나섰던 주앙 핀투, 누노 고메스와 같이 뛰었다"고 했습니다.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 프리시즌 연습 경기를 뛰었는데 벤피카 유니폼은 왜 입지 못했을까요. 서 감독은 안양 LG에서 이적료 100만 달러(당시 한화 약 9억원), 연봉 50만 달러(약 4억5천만원)에 벤피카 입단 계약서 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에 앞서 1997년 1월 FC쾰른(독일)에도 입단했다고 합니다. 보관했던 쾰른 지역지 '익스프레스'를 보여주더군요. 역시 벤피카처럼 연습 경기에서 좋은 계약이 됐지만, 이적료 책정과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준비 문제로 입단이 무산됐다고 합니다.

귀국해 당시 사정을 나름대로 기억하는 전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익명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는 대표팀이 1998 프랑스월드컵 최종 예선 준비에 바빴다. 지금처럼 구단과 구단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축구협회가 구단 일을 대신했다고 보면 된다. 벤피카에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일단 대표팀부터 살려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 감독의 벤피카 진출은 무산됐다. 지금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축구협회가 선수의 해외 진출을 좌지우지했고 유럽 도전에 대해서는 너무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축구 행정이 그만큼 후진적이었고 무조건 대표팀을 위했다."

서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는 "1997~1998 시즌 벤피카 유니폼도 제작됐고 등번호 9번을 받았다. 메디컬테스트도 문제가 없었고 내가 나오는 팬북도 제작됐고 입단 인터뷰까지도 했었다. 그런데 축구협회에서 월드컵 최종예선을 뛰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 벤피카는 최종예선을 뛰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했고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결국 입단이 무산됐다"고 하더군요.

당시 포르투갈 신문도 스크랩해 가지고 있고 유니폼, 머플러도 모두 자택에 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전설' 에우제비우와도 식사까지 하면서 '벤피카 가족'으로 공인받았다고 합니다. 서 감독이 제공한 당시 포르투갈 신문에는 연습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주앙 핀투와 손뼉을 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또, 1997~1998 시즌 주전 멤버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야망이 있는 팀의 등장(O Embrião Do Ambicioso)')'라는 부제에 서 감독은 측면 공격수로 분류됐습니다. '야망이 있는 팀'은 최근 포르투갈 신문에서도 두 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한 벤피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더군요.

그러나 서 감독이 최종적으로 빠지면서 벤피카도 적잖이 당황했고 1997~1998 시즌 준우승에 그쳤다고 합니다. 당시 벤피카는 1993~1994 시즌 이후 프리메라리가 우승이 없어서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했고 서 감독이 프리 시즌 연습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주전 멤버로 구상했지만 국가대표 지상주의였던 축구협회에서 딴죽을 걸었다는 겁니다.

역사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수원-서울의 슈퍼매치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합니다. 동시에 2009년 FIFA 위원이었던 홍명보 현 항저우 뤼청 감독이 에우제비우아의 식사 자리에서 "서정원은 잘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의문도 함께 풀렸습니다.

어쨌든, 서 감독은 벤피카를 잊고 살았지만 2011년께 축구협회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벤피카가 코치님 집 주소 등 연락처를 알려달라는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이에 서 감독은 "벤피카가 나를 왜 찾는 거죠. 나 거기서 뛴 적 없는데"라며 반문했다고 합니다. 잊고 싶었던, 이루어지지 않은 인연이었기에 말이죠.

궁금증을 안고 지난 11일(한국시간) 벤피카 역사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홈 구장 다 루이즈 옆에 박물관이 있더군요. 하필 방문 당일이 벤피카-아루카의 2016~2017 프리메이라리가 21라운드 당일이라 기자도 마음이 급했습니다. 비행기 연결편의 문제로 지연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해 빨리 둘러봤습니다.

마음이 급해 박물관을 찾는 데 30분이 소요됐지만 10유로(한화 약 1만3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더니 눈이 돌아갔습니다. 총 29개 부문으로 구성된 드넓은 곳에서 서 감독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싶었습니다.

수많은 우승컵을 지나 벤피카 경기장의 변화 등을 본 뒤 마침내 벤피카 출신의 선수들을 정리한 부문에 서게 됐습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있더군요. 아르헨티나 출신 파블로 아이마르(은퇴)장이나 현재 벤피카 주장인 브라질 출신 루이장은 유니폼이 걸려 있습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이 2015년 기준 93명으로 가장 많이 벤피카에서 뛰었더군요.

그리고 아시아, 오세아니아 선수에 중국 2명(위다바오-베이징 궈안, 웨이 황-상하이 선신), 호주 1명(카즈 파타프타)이 있는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WON SEO'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서 감독의 가운데 자인 'JUNG'은 어디 갔나 싶은데 옆에 있는 선수 등록 정보 시스템에서 확인하니 서정원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더군요.

포지션은 미드필더, 벤피카 소속으로 1997~1998 시즌 4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었고 한국 대표로 88경기를 뛰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축구협회가 기록한 87경기에서 한 경기가 더 있는데 왜 1경기가 더 추가되어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설명이 필요했고 안내원에게 사정을 전하니 일반 박물관으로 치면 기록물 관리사 격인 아우렐리오 텔레스 씨가 다가와 설명을 해줬습니다. "벤피카가 정식 계약을 한 인물들을 모은 것이다. 2016년 초에 최종 정리를 했다. 물론 아직도 확인을 하는 과거 인물들이 있다. 이 사람(서정원)이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은 벤피카에도 자료가 있고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즉 4경기만 치른 프리 시즌 연습 경기를 공식 경기로 인정받은 겁니다.

덧붙여 "중국, 호주 선수들은 2000년대에 벤피카에 왔는데 이 사람은 1990년대더라. 제작하면서 직원들도 신기했다. 1990년대면 벤피카가 우승은 못 했어도 중상위권 팀을 맴돌던 시절이라 아시아 선수 영입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정식 계약을 해야 이 박물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당시 포르투갈 신문을 찾아보니 구단과 계약을 했더라. 그럼 독수리(벤피카 마스코트)의 일원이다"라는 겁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출신 대표 선수들은 모두 유니폼이나 축구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아시아만 썰렁하게 이름만 남겨져 있길래 "이 선수가 입었던 유니폼 전시도 가능하냐"라고 물었더니 "구단에서 확보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더 욕심이 생겨 1997년 당시 근무자가 지금도 구단에 있는지, 또는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축구를 즐겨야 하는 날"이라며 아쉽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모든 직원이 아루카전 준비에 집중해 만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다음날이 한국 귀국일이었기 때문에 명함을 건네주며 "혹시라도 찾으면 이메일로 알려달라"고 했지만 여유가 넘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여전히 소식이 없습니다.

당시 같이 뛰었던, 현재 벤피카 유소년 총괄 단장 누노 고메스에게도 다각도로 연락을 취해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포르투갈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포르투갈 사람에게는 무엇을 부탁해도 오래 걸리거나 잊는다"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연락이 온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서 감독의 잃어버린 역사 일부를 벤피카에서 공인받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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