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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입술을 뺏지마”


북한 김 위원장 세 번째 방중으로 본 미중 관계

[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북중 관계를 보는 중국 측의 역사적 관점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 : 순망치한)는 논리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출병하게 된 것은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조선이라는 입술이 없어지면 바로 이빨인 명나라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괴멸 직전에 이르렀을 때 마오쩌둥 중국 주석은 이 ‘순망치한’이라는 간단한 말로 중공군 지원병의 참전을 설명했다. 이러한 중국의 참전은 한반도 분단을 65년 넘게 지속시킨 원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북중 관계는 혈맹이라기보다는 중국의 필요에 의해 역사적으로 규정된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지도자의 중국 방문은 김일성 주석이 ‘혈맹’임을 내세워 40여 차례 방문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집권 기간 중인 2000년부터 2011년까지 8차례 방문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지난 해 말까지 6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북중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 원인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가장 크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무려 85차례의 미사일 발사 시험을 단행했다. 그 중에서 시진핑 주석을 격노케 한 것은 지난 해 중국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국제 행사를 치르는 기간 동안에 감행된 미사일 발사였다. 시 주석은 이 행위를 중국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중국의 그동안 일관된 주장은 북한의 핵개발 중단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해 왔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북한이 식량 부족 등으로 붕괴돼 난민들이 중국으로 국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은 남한에 주둔 중인 미군이 북한 영역으로 진주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어 가장 우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유엔의 대북한 경제 제재에는 원칙적으로 동참하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식량 및 에너지를 공급해 왔고, 무역 관계도 단절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 해 말 미국의 압력과 핵개발의 지속으로 인해 중국은 마침내 무역 관계를 대부분 단절하고, 에너지 공급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북중 관계의 급반전은 남북미 관계의 급속한 개선이 계기라는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불을 보듯 명확하다. 게다가 관계 개선은 최고급으로 화려하게 이루어졌다.

부부 동반으로 이루어진 3월의 김 위원장 첫 번째 방중에서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레드 카펫이 깔린 인민대회장에서 최고의 국빈으로 영접했다. 5월 다롄 방문에서도 국빈 대우를 받았다. 또 지난 12일 북미정상회담 때에는 김 위원장에게 최고급 전용기를 제공했다.

지난 6년 동안 소원했던 과거를 거슬러 보면 중국의 대북한 태도 돌변은 남북미 관계의 변화에 따른 ‘입술’의 필요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자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연일 김 위원장을 칭찬하면서 북미관계가 해빙 모드로 전환됐음을 자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언론 인터뷰에서도 김 위원장을 ‘위대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미의 평화협정 체결 등이 구체화되면서 중국은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방관자적이던 중국은 북한과의 접촉을 시작한 것이다. 북중정상회담은 4월의 남북정상회담, 6월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비핵화 협상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밝힌 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독립적인 국제분쟁예방기구인 국제위기그룹의 동북아시아 선임 자문관인 마이클 코브릭은 “김 위원장을 만나는 첫 번째 지도자가 됨으로써 시 주석은 동북아시아에서 누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과거 같으면 중국은 미국이 협상을 주도케 하고 자문 역할만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 주석이 사태를 초기에 주도하고, 김 위원장과 앞으로 협상이 진행되어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결정한 것이 명백하다”라고 설명했다.

미중이 북한을 가운데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오래 전에 시작됐다고 여겨지는 두 나라의 글로벌 헤게모니 쟁탈전이 배경에 깔려있다. 미중은 이미 무역전쟁을 시작했으며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군사적으로도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무역전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만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지배해 온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또 군사적으로도 굴기를 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도 함께 포함돼 있다. 미중 대결은 종합적인 국면이고, 앞으로 세계 지배를 위한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의 북한 포용은 경제적이라기 보다는 전략적 측면이 강하다.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어 비핵화가 순조롭게 진행돼 외교 관계까지 정상화된다면 중국으로써는 전략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될 수 있다. 또 군사적으로도 북한이 남한과 함께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면 ‘입술’을 잃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 굴기’를 보는 시각은 2015년 3월 미국 의회 외교위원회에서 공개된 ‘대중국 전략 수정’(Revising U.S. Grand Strategy Toward China)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 굴기’를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의 중심세력으로써 미국을 대체한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을 약화시킨다.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신뢰성, 의존성, 기득권 등을 약화시킨다.

-경제력을 이용해 아시아 국가들을 지정학적 선호 대상으로 중국을 선택하도록 한다.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차단한다.

-중국은 미국식 경제 모델에 대해서 의심하도록 만든다. -중국은 미국의 민주적 가치가 중국 공산당의 국내 지배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시킨다.

-그리고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미국과의 본격적인 대결은 피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오랫동안에 걸쳐서 쌓아온 자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본격적으로 침해하려는 적대 국가로 중국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무역전쟁을 촉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는 가장 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가장 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경제 발전을 통해 G2로 굴기했지만,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이 시작된 시점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점증하는 국내적 민주화 요구를 잠재울 수 있는 수단으로 중국 공산당은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 보좌관은 2010년 펴낸 자신의 저서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 출간)에서 중국 석학 21명을 상대로 인터뷰한 내용을 실었다. 놀라운 사실은 21명의 중국 석학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언젠가 미국과의 일전(一戰)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것이 전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미중 대결은 이미 오래 전에 예견된 것이고, 이제 중국으로서는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처럼 다시 ‘입술’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상도기자 kimsangd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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