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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小기업 열전] (19)벨웨이브…"최고 휴대폰 개발 전문기업 꿈꾼다"


 

지난해 12월 22일 청와대.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은 이날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간담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벨웨이브가 SK텔레콤과 함께 서비스하고 있는 '키즈폰' 사업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 우수 사례로 꼽힌 것이다.

벨웨이브는 내수용 휴대폰을 거의 개발하지 않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업이지만 지난 2003년 4억 달러 수출을 달성할 정도로 휴대폰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자랑한다. 벨웨이브는 99년 설립된 중견 휴대폰 업체로, 주로 CDMA 모듈 및 GSM휴대폰을 개발,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벨웨이브는 올해 러시아, 서유럽, 중남미, 중동 등으로 휴대폰 공급을 확대하며 제2의 부흥기를 꿈꾸고 있다.

'사시미론'으로 TI 설득

벨웨이브 창업자이기도 한 양기곤 사장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CDMA 이동통신의 '진짜 원조'다. 양 사장은 9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그만두기까지 이동통신개발단 무선기술개발실장으로 재직하며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맥슨텔레콤 등과 함께 CDMA 기지국 및 단말기를 개발했다.

양 사장은 그 후 연구소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을 민간 기업에서 활용하기 위해 94년 코오롱정보통신으로 자리를 옯겼다. 그 후 97년부터 99년까지 팬택의 연구소장을 지냈다.

"ETRI를 퇴직한다고 하자 안정되고 장래가 보장되는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고 가족과 친지, 직장 상사들이 극구 말렸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을 민간 기업에 전파하고 활용한다는 사명감을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결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양기곤 사장은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한 일류 회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창업을 결심, 99년 9월 벨웨이브를 설립했다.

2000년대 초반은 국내 이동전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기 때문에 벨웨이브는 CDMA 모듈 개발만으로도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2000년 80억원이었던 연간 매출이 2001년에는 270억원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이후 양기곤 사장은 CDMA 모듈뿐 아니라 당시 국내 기업들이 거의 진출하지 않았던 GSM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CDMA 분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기 때문에 국내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반면,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GSM폰 사업은 국내 대기업 조차 초기 진입 단계였다.

양 사장은 세계적인 휴대폰 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는 GSM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GSM 휴대폰은 세계적인 휴대폰 제조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았다.

GSM 휴대폰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던 양기곤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칩셋 개발 업체인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관계자를 만나 TI의 아시아 진출 계획을 알게 됐다.

TI는 당시 세계 최대 휴대폰 회사인 노키아에 GSM폰 칩셋을 공급하는 휴대폰 칩셋 회사였다. TI는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으나 노력만큼 성과가 없었다.

양기곤 사장은 TI와 파트너십을 통해 중국에 공동 진출할 것을 제안했다. 이때 TI를 설득하기 위해 양 사장이 생각해 낸 것이 ‘사시미와 중국 요리 주방장’ 얘기다.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사시미를 잘 먹지만 중국 사람들은 사시미를 잘 안먹습니다. 중국인들은 날 생선은 잘 먹지 않죠. TI의 칩셋도 사시미와 같습니다. 따라서 벨웨이브가 날생선(쳅셋)을 훌륭한 중국 요리(휴대폰)로 만들어 주면 중국 사람들이 잘 먹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습니다.”

아직 중국에서는 휴대폰 자체 개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개발은 한국에서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말이 통해 TI로부터 400만 달러의 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으며 소프트웨어(SW)를 포함한 관련 기술을 유리한 조건으로 받게 됐다. 이 일은 향후 벨웨이브가 급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모이와 휴대폰 산업을 논하다

벨웨이브의 최초 GSM 휴대폰 고객은 LG전자와 VK였다. 벨웨이브는 두 회사를 상대로 ODE(기술개발용역)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 중소 휴대폰 기업들은 모듈을 수입해 단순히 조립만 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벨웨이브는 TI의 칩을 이용해 모듈부터 완제품까지 자체 개발했다.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양기곤 사장은 그 후 직접 중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시장 정보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적합한 고객을 찾기 어려웠다. 잘 알려진 대기업을 찾아가면 역사도 없고 규모도 작다고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북경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두 사람이 앉아서 휴대폰 사업에 대한 고충을 얘기하는 것을 듣고 합석하게 됐다. 이들은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아모이(Amoi)라는 휴대폰 회사의 사장과 부사장이었다.

이들은 양사장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휴대폰 사업 방향을 놓고 같이 고민을 나누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차츰 양 사장에 대해 신뢰를 갖기 시작했으며 한국 방문을 약속했다.

이렇게 시작된 중국 GSM폰 사업은 아모이가 중국 3대 휴대폰 3대 회사로 크면서 벨웨이브도 함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후 벨웨이브는 중국 최대 휴대폰 업체인 닝보버드 및 판다(Panda)와도 비즈니스를 하게 됐다. 2002년 벨웨이브의 매출은 2천700억원으로 늘었다. 2003년에는 4천100억원을 수출, 국내 벤처기업 중 최고 수출액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중국 전역에 '사스'가 퍼지면서 대기업들도 모두 중국에서 철수했습니다. 이때 벨웨이브 임직원들은 중국에서 목숨을 건 비즈니스를 전개하면서 중국 업체들을 감동시켰죠."

특히, 닝보버드와는 휴대폰 단일 모델로는 최고 금액인 7천만 달러의 공급 계약을 체결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닝보버드에 제공하는 모델은 다른 고객에게 제공하지 않겠다는 벨웨이브의 대 고객 전략이 까다로운 닝보버드에 강한 신뢰감을 심어준 결과였다. 이 공급 계약은 처음 접촉에서부터 최종 계약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아 중국인들조차 놀랄만한 기록을 남겼다.

◆구조조정의 시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시작된 중국 휴대폰 시장의 과열 경쟁으로 벨웨이브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 휴대폰 기업들이 타격을 입게 됐다.

벨웨이브가 성공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입하면서 많은 국내 CDMA 휴대폰 기업들이 GSM 폰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이와 함께 그동안 한국으로부터 휴대폰을 공급받던 중국 기업들이 차츰 기술력을 확보해 자체 생산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가격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는 벨웨이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4년에는 1천500억원의 매출과 적자를 기록했다. 벨웨이브와 경쟁하던 많은 국내 중견기업들은 부도나 청산, 사업부 매각 등의 몰락을 길을 걸었다. 호황일 때 위기에 대비해야 했으나 뒤늦은 후회였다.

"고속 성장 후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으나 그때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저를 포함한 한국 중소기업, 특히 벤처기업 CEO들의 경영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양 사장은 중국 쇼크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구조조정과 함께 고객을 다변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고급인력과 자금이 필요했지만 금융 기관들은 기다리지 않았다. 중국 시장이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바로 대출금 회수 압박이 들어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벨웨이브는 130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하면서 현금 중심의 경영에 돌입했다. 그러는 중에도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회사가 어렵더라도 급속도로 발전하는 휴대폰 시장에서 핵심 기술 보유가 유일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300만 화소 카메라폰, 15㎜ 슬림 슬라이딩폰 등 고기능 휴대폰과 함께 저가 시장을 타깃으로 한 30달러짜리 휴대폰 개발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다시 일어선 벨웨이브

양사장은 2005년 한해 동안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선진 시장을 개척하는데 전념했다. 그 결과 벨웨이브는 지난 해 러시아, 서유럽, 중남미, 중동 등에 휴대폰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아프리카와 호주를 제외한 거의 전세계를 대상으로 휴대폰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해외 시장에서는 한국의 휴대폰 경쟁력을 높이 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R&D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인정하고 있죠."

벨웨이브는 2004년부터 러시아의 유통업체 복스텔(Voxtel)에 휴대폰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영국의 이동통신업체인 버진(Virgin)에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KPN 및 중동의 현지 유통업체에도 휴대폰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작년 말에는 미국 최대 휴대폰 유통업체인 유티스타컴(UTSTARCOM)에도 휴대폰을 공급해 중남미 7개국에 휴대폰을 수출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1천200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으며 적자폭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었다. 작년 11월부터는 월간 기준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벨웨이브는 올해에는 수익창출 및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에는 생산대수를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는 범위에서 1천500억원의 매출과 8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꾸준히 캐쉬카우 역할을 하던 CDMA 모듈 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분사해 글로벌 비즈니스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작년 10월 소프트뱅크로부터 5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올해에는 또 다른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1천만 달러의 외자 유치가 순조롭게 진행중에 있다.

벨웨이브는 일반적인 기능의 휴대폰 보다는 위치기반서비스(LBS) 기능이 결합된 키즈폰, 실버폰 등 특수 기능의 휴대폰 사업을 이동통신사와 협업 체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성공신화 다시 일군다"…양기곤 벨웨이브 사장

2000년에 삼성전자는 양 사장을 상대로 휴대폰 핵심 기술 유출로 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2003년에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몇 차례의 공방 끝에 결국 대법원은 양사장의 손을 들어줘 기술 유출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벨웨이브는 한번의 도약 기회를 잃었다. 2002~2003년 중국 시장의 활황으로 중견 휴대폰 기업들이 잇달아 코스닥 등록에 성공했지만 정작 벤처 수출 1위 기업이었던 벨웨이브는 형사 소송 때문에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찾아온 중국발 쇼크. 2004년은 국내 중견 휴대폰 업계에는 '가혹한 계절'이었다. 부도, 청산, 코스닥퇴출 등 중국발 쇼크를 이겨내지 못한 중견 휴대폰 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벨웨이브도 이때 생존을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과 달리 벨웨이브는 이런 큰 시련을 이겨내고 회생에 성공했다. 지난해 10월에 소프트뱅크로부터 500만 달러의 투자를 전환사채(CB) 방식으로 유치하는가 하면 11월부터는 월별 기준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슬림슬라이드폰, 30달러 저가폰 등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좋아 수출 다변화에도 성공했다.

벨웨이브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다. 양 사장 본인이 ETRI 연구원 출신이었기 때문에 기술력 확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어려움 속에서도 GSM 특허 매입 및 등록 등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했다.

또한, 선진 기업과의 꾸준한 투자 유치와 제휴를 확대한 것이 위기의 순간을 이길 수 있는힘이 됐다. 양 사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주주로서의 욕심은 없다.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지분을 내놓을 수 있으며 전문 경영인으로 남고 싶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소프트뱅크가 작년에 투자한 500만 달러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최대주주가 된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와의 긴밀한 제휴로 벨웨이브는 소프트뱅크 계열인 미국의 최대 유통회사인 유티스타컴에 휴대폰을 공급할 수 있었다.

GSM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의 제휴는 해외기업으로부터 GSM 특허 공격이 있을 때마다 훌륭한 방어막이 되고 있다.

올해에도 양기곤 사장은 역시 외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양 사장은 "협상이 완료되면 자금력, 마케팅, 원천기술 등 다방면에서 안정된 글로벌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기곤 사장은 올해 최고의 휴대폰 개발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또한 매출 확대보다 수익 중심의 경영을 전개하는 동시에 작년에 개척한 서유럽과 중남미, 중동 등의 지역에서 안정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강희종기자 hjka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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