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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휴대폰업계, 비상구는 없나-중] "잔치는 끝, 지금은 구조적 위기"


 

2002년 11월. 2년여간 수직 상승했던 중국 CDMA 시장이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계가 없을 것 같았던 CDMA 시장의 성장 속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아차 싶었다"는 것이 텔슨전자 관계자의 후회다. 찍어내는 족족 무섭게 빨아 들일 줄만 알았던 중국 시장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급강하할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

'차이나 악몽'은 그렇게 시작됐다. 공급과잉이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재고물량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고,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은 공장 가동을 중단할 위기를 겨우 넘겨야만 했다.

더욱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휴대폰을 찍어내기 시작한 현지 제조사들의 가격 압박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단말기 평균 판매가는 30% 이상 급락했다.

'밑지고 장사한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한 것이 그 때부터였다. 중국 시장에 '올인'한 것을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깊히 발을 집어 넣어 쉽게 뺄 수도 없었다.

스탠더드텔레콤, 이론와이어리스, 인터큐브, 모닷텔 등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적신호가 울리기 시작하자, 금융권에서는 무차별 자금 회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IMF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금융권은 조금만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면 무조건 달려 들어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는 유동성 위기로 이어져 세원텔레콤, 텔슨전자 등 국내 간판급 중견 업체들마저 넘어 뜨렸다.

그 여진은 여전히 나머지 중견·중소업체들을 휘감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발 악몽"

2002년말 시작된 차이나 쇼크는 2003년 들어 더욱 거세졌다.

CDMA 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이 그해 하반기들어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으며, 네트워크 투자도 축소했다.

당연히 GSM 방식과의 통화 품질 경쟁에서 CDMA는 뒤쳐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 축소를 불러 왔다.

작년말 기준으로 중국 시장에는 무려 8천만대에 달하는 단말기 유통 재고가 수북히 쌓이기 시작했고, 이는 당시 80% 이상의 매출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중견·중소업체들에는 큰 타격이었다.

숨돌릴 겨를이 없었다. 수십만대 구매 계약을 한 중국 유통업체들이 이미 자재 발주가 나간 상황에서, 등을 돌리기가 일쑤였다.

또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지면서 CDMA 단말기 판매 라이선스를 획득한 현지 17개 유통업체들은 본격적인 가격인하 압박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작년부터 GSM 시장에서는 TCL, 닝보버드가, CDMA 시장에서는 하이센스, 소우텍 등이 톱5에 진입할 만큼 약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제는 무선인터넷 소프트웨어 부문을 빼놓고는 하드웨어 제조 부문에서는 거의 중국과 한국 간의 기술 격차는 없다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경고다.

자체 브랜드로 GSM 단말기를 중국에 공급하는 VK 관계자는 "최신 단말기인 2.5세대 GSM 방식인 'GPRS' 카메라폰조차 중국 제조사들은 이제 찍어내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기술 격차가 거의 사라졌다"고 털어 놓았다.

◆"잔치는 끝났다"

SK텔레텍의 마케팅본부장인 윤민승 상무는 "중견·중소업체들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몇몇 업체들의 어려움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며 "정말 중요한 점은 휴대폰 산업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SK상사를 시작으로 19년간 수출 전선을 뛰어온 그는 "스테레오 등 무수한 기기들이 거쳐온 전철을 휴대폰도 이제 밟아가고 있다"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던 황금기는 이제 끝났다"고 판단했다.

이어 "황금기에는 적당히 만들어 공급해도 시장에서 팔렸지만, 이제는 정말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부연했다.

지난 96년 한국노키아에 입사, 현재는 단말사업부문장을 맡고 있는 손영민 상무도 "휴대폰 장사는 이제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는 "주요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라며 "중국 역시 가입자 증가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도 등 신흥시장도 1, 2년 안에 금방 포화상태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중 적잖은 곳이 5%의 영업이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엄밀히 따지면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있거나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계 1위의 노키아가 가격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은 이 같은 세계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수요와 공급 곡선이 예전에는 '공급 부족'으로 기울었지만, 이제는 '공급과잉'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즉, 휴대폰 산업의 패러다임이 '기술집약적인 산업'에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바뀌었고, 연간 최소한 1천만대 이상을 찍어내지 못하는 단말기 제조사들은 뭔가 특단의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종전과 같은 방식만을 고수해서는 버틸 수 없다는 얘기다.

가격만 떨어 뜨려야 하는 게 아니라, 품질도 담보해야 비로소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품질을 담보한 가격경쟁력이나 차별화된 제품력, 이 두 축 사이에 어설프게 서 있다는 '큰 코 다치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국내 중견·중소업체들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곧 '구조적 위기'라는 얘기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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