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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IT 뉴리더-4]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 세계적인 기호학자이기도 한 에코는 한 때 '인터넷은 쓰레기 더미'라고 혹평한 적 있다.

지난 1990년대말 논문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색했던 그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 때문에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 결국 그는 인터넷 검색을 포기하고 도서관에서 원시적인 방법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1995년 당시 스탠퍼드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무질서하게 리스트를 쏟아내는 당시의 검색엔진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초기 정보기술(IT) 혁명을 주도했던 많은 선배들이 그랬듯, 페이지와 브린은 자신들의 불만을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 이들은 '얼마나 링크 걸 가치가 있을까'란 것을 기준으로 검색된 사이트의 우선 순위를 평가했다.

'페이지 순위(Page rank)'로 명명된 이 방식은 이후 차별화된 구글 검색의 기본 바탕이 됐다. 이들은 그 뒤 다른 알고리즘을 보완해 '구글 특유의' 검색 방법을 확립했다.

출범 당시 3천만 웹 페이지 정도였던 구글의 검색 범위는 불과 4년만에 100 배 수준인 30억 페이지로 늘어났다. 방화벽 뒤쪽에 숨어 있는 기업 사이트,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는 개인 페이지를 제외하면 웬만한 웹 사이트는 전부 구글의 검색망에 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체계적인 검색으로 인기 몰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러시아 이민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미시간 지역 출신인 래리 페이지는 아버지가 수학 교수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IT 혁명 본산' 실리콘밸리의 젖줄 노릇을 했던 스탠퍼드대학 박사 과정에 적을 두었던 이들은 1995년 무렵부터 검색 엔진에 남다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조직하는 데 검색엔진이 유용하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 그런 만큼 가중치에 따라 검색 결과에 순위를 부여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구글의 페이지 순위(PageRank)는 500변수와 20억 용어가 있는 세밀한 공식을 사용, 객관적인 웹 페이지 순위를 계산한다. 이런 객관적인 순위를 구성하기 위해 구글은 인터넷의 광범위한 구조를 직접 이용한다.

이를테면, A라는 페이지에서 B라는 페이지로 연결하는 링크가 있으면, 이를 일종의 투표로 본다. 많이 투표된 페이지는 당연히 중요하게 평가된다.

하지만 이같은 기준만으로는 정확한 평가가 힘든 것이 현실. 구글은 서열을 매기는 과정에서 저명한 뉴스 사이트는 개인 블로그에 비해 가산점을 부과하는 등 가중치를 적용, 리스트 순위의 신뢰도를 높였다.

구글의 위력은 수치로 증명된다. 지난 5월 전세계 40억건의 인터넷 검색 가운데 32%를 차지해 단연 선두를 지켰다. 야후(25%)와 AOL(19%), MSN(15%) 등을 멀찍이 따돌린 수치. 지난 2000년 1억 달러였던 회사매출도 올해는 최대 2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 구글은 '무한대'를 상징하는 말

현재 30억 페이지를 포괄하고 있는 구글 검색 엔진의 '무한대성'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는 셈. 구글 직원들은 자신들의 본부를 '구글플렉스(Googleplex)'라 부르고 있다. 이 역시 무한대수를 의미하는 'googolplex'를 패러디한 말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1998년 4월 개최된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에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때부터 구글 특유의 검색 방법은 업계와 학계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인포시크(Infoseek), 익사이트, 야후 등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기술 판매에 본격 착수했다. 하지만 초창기엔 생각만큼 반응이 오지 않았다.

이들이 동분 서주하고 있는 가운데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인 안드레아스 베흐톨쉐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탠퍼드대학에서 베흐톨쉐임을 만난 페이지와 브린은 자신들의 엔진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잠시 동안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있던 베흐톨쉐임은 즉석에서 10만 달러를 수표로 끊어줬다.

구글 브랜드로 영업을 하던 페이지와 브린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액이 굴러들어온 셈. 하지만 그게 또 이들에겐 두통거리로 작용했다. 그 때까지도 구글은 은행 계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닷컴 대표 주자 중 하나로 자리잡은 구글이지만, 처음 회사를 만드는 과정은 이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구글'이란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서서히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1999년 6월까지 구글은 3천만 달러 정도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투자 기업 중엔 벤처 캐피털인 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와 Sequoia Capital를 비롯, 스탠퍼드대학과 개인 투자자들도 다수 포함됐다.

이로부터 3개월 뒤. 구글은 마침내 사이트를 오픈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겠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구글을 '세상의 모든 정보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사이버 세상의 백과사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야심찬 비전이다.

구글은 이를 위해 지난 해 뉴스그룹 검색 엔진인 데자뉴스닷컴(Dejanews.com)을 인수했다. 현재 구글은 뉴스 그룹에 올라온 게시물 8억 건을 DB로 보유하고 있다. 섹스부터 인문과학까지 다양한 게시물들은 곧바로 구글 검색의 자산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또 올초에는 블로그 전문사이트인 블로거(www.blogger.com)를 인수했다. 최근 들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블로그는 '개인 지식 검색'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제 전 세계의 정보를 집대성한 '지식 제국' 건설이란 원대한 꿈을 향해 한발 한발씩 전진해 나가고 있다.

고대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바빌로니아 대도서관처럼, 구글 역시 21세기 디지털 지식 첨병이란 야심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원대한 꿈을 가진 구글의 경쟁력은 전체 직원 800명 중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만 70명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인적 자원. 브린과 페이지 두 명의 공동 창업자는 막강한 인적 파워를 앞세워 사이버 세상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 "우린 넷스케이프와 다르다"

지난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란 웹 브라우저를 처음 선보일 당시 이 부문을 독점하고 있던 넷스케이프는 코방귀를 뀌었다. '그래 봐야 넷스케이프 아성이 무너지랴…'는 자심감이 있었던 것.

패기넘친 마크 앤드리센과 노회한 짐 클라크 '듀오'가 이끌었던 넷스케이프로선 MS의 도전장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이들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윈도 운영체제를 등에 업은 MS가 본격적인 공세를 가하면서 넷스케이프는 무참하게 붕괴했다.

'시장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MS는 검색 부문 역시 그냥 놔두지 않은 태세다. 엄청난 자금력과 윈도 운영체제란 전가의 보도를 보유하고 있는 MS는 최근 들어 검색 시장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버추어를 또 다른 거인인 야후에게 빼앗기긴 했지만, MS는 현재 검색 기술 개발에만 70명의 엔지니어를 투입하는 등 언제든지 일전을 벌일 태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오버추어를 인수하면서 검색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야후도 신경 쓰이는 존재다. MS 같은 파괴력은 없을 지 몰라도, 탄탄한 사용자 기반을 자랑하는 야후 역시 상당한 내공을 자랑하고 있다.

페이지와 브린이 지난 2001년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것은 다분히 MS를 의식한 때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노벨 CEO를 역임했던 슈미트는 MS와의 전쟁 경험이 풍부한 경영자로 통한다.

페이지와 브린은 "우리는 결코 넷스케이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9개 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계속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지만, MS와 야후란 강적이 버티고 있는 시장은 여전히 위험 가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 "야후, MS와 한판 승부 기대하시라?

페이지와 브린은 현재 구글에서 경영업무, 기술 업무 담당 부사장 직함을 갖고 있다. 이제 막 30대 초입에 들어선 페이지나 20대의 마지막 해를 몇 달 남겨 놓지 않는 브린이 감당하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이미 유료 검색과 ‘스폰서 광고’ 부문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구글은 아메리카온라인(AOL)과 아마존, 어스링크, 야후재팬, 유럽의 BT오픈월드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특히 야후에 인수된 오버추어가 잠시 주춤거리는 틈을 타 구글의 질주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은 현재 88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이 중엔 라틴어, 우르두(Urdu)어 등도 포함될 정도. 가히 전 세계의 모든 언어를 포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5년 여 만에 최강의 닷컴 파워의 떠오른 구글을 이끄는 페이지와 브린.

이들은 검색 시장을 놓고 MS, 야후와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검색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달했다'는 주변의 평가 역시 신경 거슬리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페이지와 브린은 '신중하게 접근하겠지만, 결코 밀릴 것은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에릭 슈미트란 베테랑 경영진의 연륜과 이들의 기술력이 결합되면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페이지와 브린, 그리고 에릭 슈미트 3두 마차가 이끄는 '구글호'의 질주. 그리고 이들을 견제하는 야후와 MS 양강의 공세가 어우러지게될 검색엔진 시장은 올해 IT 분야 최대 격전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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