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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IT 뉴리더-2] 테리 시멜 야후 CEO…"디지털 테마파크 만들겠다"


 

2001년 5월 1일. 캘리포니아 주 서니배일에 위치한 야후 본부.

티모시 쿠글(Timothy Koogle) 후임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테리 시멜(Terry Semel)이 '닷컴의 상징' 야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날 야후 본부에 첫 발을 내디딘 시멜에게 쏟아진 시선은 그리 부드럽지는 않았다.

야후 CEO로 테리 시멜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찌…"란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듯 했다.

계속된 경영부진으로 이사회로부터 사퇴 권고를 받긴 했지만, 팀 쿠글은 '닷컴의 전설'을 안고 있는 인물. 햄버거로 끼니를 떼우며 허름한 차고에서 꿈을 키우던, 닷컴 혁명 초창기의 향수에 젖은 사람들에게 쿠글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은 존재다.

하지만 헐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테리 시멜에게는 이같은 전설이 없다.

테리 시멜(60).

30년 동안 헐리우드 일선을 누빈 인물. 매트릭스, 리쎌 웨폰 등 수많은 히트 영화를 만든 워너브러더스 사장을 18년 동안이나 역임한 재주꾼.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이란 비아냥을 듣기도 했던 테리 시멜은 지난 2년여 동안 야후의 체질을 성공적으로 바꾸어 왔다.

자신이 사장 재직 당시 선보였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헐리우드 키드' 테리 시멜은 이제 온라인 세상에서 또 한번의 마술을 부리려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야후를 '디지털 테마파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나의 경쟁무기는 과감한 협상력"

시멜은 야후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야후는 지난 2002년 미국 통신회사인 SBC 커뮤니케이션즈와 광대역 사업 제휴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들어선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과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

야후는 SBC와의 제휴를 통해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 이름을 내밀 수 있게 됐다. 그 뿐 아니라, 이 사업을 통해 올해 연 매출 7천만 달러를 추가할 수 있게 됐다.

또 지난 해 핫잡스(Hotjobs.com) 매입을 통해 온라인 취업 시장에도 진출했다. 이 사업 역시 올해 8천만 달러의 매출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시멜 취임 이후 최대 히트작은 검색서비스 전문체인 오버추어 인수. 야후는 지난 7월 현금 3억1천200만 달러와 함께 오버추어 주식 한 주당 야후 주식 0.6108주를 지급하는 등 16억3천만 달러 규모의 인수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야후의 지난 2001년 11월 오버추어의 유료 검색 리스트를 자사 사이트에 노출시켜 주는 대가로 일정액을 받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오버추어와의 계약이 '황금알 낳는 거위'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야후는 지난 1분기 오버추어와의 제휴를 통해 5천4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 야후가 오버추어를 직접 인수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최근 들어 유료 검색 분야 시장으로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 MS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검색 시장을 놓고 구글, MS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야후는 오버추어 인수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과감한 인수 합병 전략의 중심에 테리 시멜의 과감한 협상력이 자리잡고 있다.

◆ 워너브러더스, 18년 만에 10배로 키워

테리 시멜의 협상력과 영업력은 워너브러더스 재임 당시부터 정평이 나 있던 부문. 뉴욕 브루클린 태생인 시멜은 대학 졸업 후 잠시 경리 관련 일을 하다가 바로 워너 브러더스 영화사에 취직했다.

이후 그는 CBS 시네마센터 필름 등 영화 업계를 두루 섭렵했다. 1975년 다시 워너브러더스로 컴백한 시멜은 곧바로 부사장 직을 맡으면서 회사 영업 총책임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다고 시멜의 워너브러더스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82년 친구인 로버트 달리와 공동 대표 사장 자리를 맡는 등 승승장구하던 그는 1989년 워너브러더스가 타임사에 매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외형상 이같은 위기는 시멜에겐 도리어 기회였다. 시멜은 타임 자회사로 운영되던 워너브러더스를 이끌면서 영화와 출판산업이 결합된 거대 미디어 회사를 몸소 체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

시멜 사장은 TV, 음반 사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 스토어'를 설립, 어린이 고객들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시멜은 이처럼 탁월한 영업력과 협상 능력을 바탕으로 연 매출 10억 달러 규모에 불과했던 워너브러더스를 18년 만에 110억 달러 회사로 키워냈다.

에이스 벤추라, 배트맨, 리셀웨폰, 폴리스 아카데미 등이 그가 사장을 맡고 있는 동안 제작된 영화들. 그는 또 '불의 전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용서받지 못한 자' 등의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야후를 디지털 디즈니랜드로 만들겠다"

'닷컴 황제' 야후와 '헐리우드의 재주꾼' 테리 시멜.

언뜻 보기엔 그리 잘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다. 닷컴과 굴뚝 마냥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한거풀만 벗겨내면 둘 사이엔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리 시멜이 꿈꾸는 야후의 미래상은 바로 '디지털 디즈니랜드'.

한 마디로 인터넷 시대의 테마 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 테리 시멜의 궁극적인 꿈이다. 비즈니스위크는 테리 시멜의 이같은 전략을 '야후, 제2막(Yahoo, Act Two)'란 제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이트에 접속한 고객들이 환상적인 콘텐츠들로 가득한 디지털 세상을 맘껏 즐기도록 하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테리 시멜이 그리고 있는 야후의 미래 모습이다. 헐리우드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시멜인 만큼, '디지털 테마파크'는 결코 생뚱맞은 컨셉은 아니다.

테리 시멜의 이같은 그림은 야후의 고민과도 맞아 떨어진다. 야후는 한 때 온라인 광고 매출 비중이 전체의 90%에 육박했다. 금방이라도 닷컴 기업들이 비즈니스 세계를 뒤흔들 듯했던 2000년 초반만 해도 이같은 매출 구조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그냥 돈이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닷컴 거품이 사라지면서 '온라인 광고 무용론'까지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 야후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휘몰아친 이같은 광풍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이같은 실적 부진은 제리 양과 함께 야후를 키워왔던 팀 쿠글을 불명예 퇴진으로 몰고 갔다. 이 때부터 야후는 경기에 민감한 온라인 광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결코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이처럼 수익 다각화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야후에겐 '디지털 테마파크'란 시멜의 화두는 '가뭄 끝의 단비'가 아닐 수 없었다.

현재 야후의 매출 중 디지털 음악, 온라인 게임, 구인구직, 유료 이메일, 유료 검색 등 온라인 광고 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 정도로 늘어났다. 시멜은 내년까지 이 비중을 50% 수준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 "로마의 힘은 도로, 나의 힘은 초고속인터넷"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힘을 '도로'에서 찾았다.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부상하는 데는 사통팔달로 통하도록 닦았던 도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로마 마니아' 시오노 나나미의 진단이었다.

'디지털 테마파크'를 꿈꾸는 테리 시멜에게도 '도로'는 더 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디지털 세계인만큼 디지털 도로가 필요한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지난 2002년 미국 통신회사인 SBC 커뮤니케이션즈와 광대역 사업 제휴 계약을 체결한 것은 바로 디지털 테마파크로 가는 고속도로를 뚫기 위한 조치. 시멜은 올들어선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과도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기본 인프라를 차근차근 구축해 온 시멜에게 남은 일은 거대한 디지털 테마파크를 재미있는 콘텐츠로 채워넣는 것. 하지만 헐리우드에서 이미 능력을 검증한 시멜인 만큼 이 부분은 그리 부담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야후의 '제2막'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현재 29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유료 고객들이 오는 2005년에는 1천만 명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향후 2년 내 수익은 3억5천만 달러, 매출은 17억 달러로 각각 75%, 30%의 고성장세를 구가할 것이라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이다.

물론 테리 시멜의 디지털 테마파크 전략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 무림'을 호령하고 있는 MSN, AOL 등도 디지털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CNN, 워너 뮤직 등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AOL, MS란 거대 디지털 왕국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MSN 모두 고수급의 '내공'을 자랑하는 상대. 게다가 MSN은 야후-SBC 커플에 비해 초고속 구축 비율이 27%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MSN의 그룹 제품 관리 책임자인 리사 거리는 "야후의 브랜드는 공짜 정보에 익숙한 고객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이런 고객들의 지갑을 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며 약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야후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검색 부문에선 구글(Google)이란 또 다른 강적이 등장했다. 구글은 불과 4년 만에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상대다.

고객들이 야후의 테마파크 대신 구글이 제공하는 무제한적인 정보 쪽으로 달려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오버추어 인수를 통해 구글을 어느 정도 견제하긴 했지만, 아직도 안심하긴 이른 상태다. 집안 단속에 어느 정도 성공한 시멜이지만 '디지털 무림 고수' 들과의 일합을 통해 자신의 내공을 증명해야만 화려한 옛 영광을 꿈꾸는 주주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 "나의 능력을 보여주마"

시멜은 지금까지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월스트리트에서도 서서히 팬들이 생기고 있다. 불과 8개월 만에 주가가 200% 폭등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보이고 있다.

아메리노 투자자문의 알베르토 빌라 사장은 "야후 주식은 장기적으로 두 세 배 정도로 오를 가능성이 많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야후는 아직도 전성기에 비해선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시장 가치는 2000년 1천270억 달러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당시엔 야후란 브랜드 하나만으로도 돈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투자자들 역시 쉴 새 없이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고 부르짖고 있다.

이런 가운데 테리 시멜은 조용히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드러내 보이고 있다. 비록 전성기에 비해선 야후의 몸피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실속면에선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주당 수익률(PER)은 79로 거대 왕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3배 수준에 달할 정도. 돈 버는 닷컴으로 정평있는 이베이의 67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야후 제2막'을 연출하고 있는 테리 시멜은 그동안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데 공을 들여왔다. 전통적으로 '자발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가 강했던 야후에 자신의 색깔을 덧입혔다. 자유분방한 브레인 스토밍이 자리잡고 있던 곳에 테스트와 분석이 대신 들어섰다.

불과 2녀 여 만에 야후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이제 험난한 경쟁 대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과 무기로 새롭게 무장하고 있다.

이같은 바탕 위에서 시멜은 본격적으로 '디지털 테마파크' 건설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 세상의 디즈니랜드'라는 시멜의 꿈이 완성된다면, 야후는 또 한번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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