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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통신정책 대 해부]-(제1부)-기술육성 정책... 5년간의 단절


 

정보통신(IT) 기술정책은 비단 정보통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향배를 좌우한다. 과거 전전자 교환기(TDX)나 CDMA 기술정책을 놓고 입증이 된다.

10년 전 정부가 CDMA 방식으로 이동통신 표준기술 개발을 결정했을 때 국민 대다수가 휴대폰을 사용하고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휴대폰을 수출하는 오늘의 현실이 오리라고 예견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당시, CDMA 채택에 완강히 반대를 표명하면서 다른 표준과 저울질을 했던 일부 부류도 지금은 CDMA 기술정책의 풍성한 과실을 따 먹고 있을 정도다.

세상에 완전하게 태어나는 기술은 없다. '완전성'을 향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 '기술'이다. 그리고, 한 나라를 먹여 살리는 기술은 그 나라의 기술정책 방향에 따라 '성공과 퇴보'를 달리할 수 있다.

그만큼 정부의 IT 기술정책은 산업 발전방향에 따라 그 안목이 높고, 깊고, 그리고 또 넓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들어 CDMA 이후 정보통신 서비스와 장비 산업을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뚜렷한 아이템도, 이를 육성하려는 기술정책도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 국민의 정부 기술정책, 5년간의 단절

과거 80∼90년대 기술정책의 성과로는 4K DRAM, 중형컴퓨터, TDX 교환기, CDMA 이동통신 등을 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관(官)이 전략적 기술을 선택해 원천기술은 해외에서 도입하고 국내에서는 상용장비를 개발, 내수시장을 만들어 해외로 나가는 일종의 하도급 시스템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막대한 연구개발 자금지원뿐만 아니라 공공구매, 경쟁확대를 통한 개발기술의 초기시장 확보라는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됐다.

70∼80년대 중화학 경공업 중심이던 우리 산업이 2001년 국내 반도체 및 부분품 산업 생산액이 37조 4천242억원, 컴퓨터 및 주변기기 생산액이 18조 2천772억원, 기간통신서비스 생산액이 23조 4천65억원에 달하는 것을 보면 과거 정부 주도의 IT성장 기술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IMF 사태와 함께 출범한 국민의 정부의 경우 과거 80∼90년대 기술정책의 성과를 기반으로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이전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생산요소 중에서 자본, 노동보다 정보를 가공한 지식산업을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 중심의 IT기술 정책에서 정보와 지식을 가공해 세계로 진출하려는 벤처기업 육성에 매진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벤치마킹하고 새로운 신기술 습득에 총력전을 기울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아래 기술개발 정책이 너무 광범위하고 단기적인 성과를 얻기 위한 정책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공정기술에만 집중돼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정부 부처간의 선언적인 기술정책이 과도하게 포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정부의 기술정책이 마련한 토양에서 자라난 과실(CDMA)을 따 먹는데 급급했지 미래를 위한 투자와 준비가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수조원에 이르는 정보화 촉진기금을 쏟아부어 키운 벤처기업들이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정부의 기술정책의 문제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국민의 정부에는 미래의 기술정책은 없고 머니게임 노하우만 육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신기술 국제표준 획득 노력이 표준내 경쟁에 집중돼 있으며 표준간 경쟁이나 세대간 경쟁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다시 말해 표준내 경쟁은 이미 존재해 있는 기술을 도입해 우리의 양산 및 공정기술이나 응용기술 등을 접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형태로 이 경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유럽 등 선진 업체들에게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1천만명이 넘는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을 대표할 만한 국산 장비업체를 키우지 못한 점이나 지금까지 우리가 퀄컴에게 지불한 CDMA 로열티가 1조원이 넘는다는 통계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또 향후 야기될 수 있는 GSM 관련 로열티 요구도 감당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이미 현존하는 기술을 도입해 정책적 지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세대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표준 개발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모 대기업 정보통신협력팀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에서 CDMA 산업이 활짝 꽃을 피웠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지금은 CDMA 환상에 사로 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3세대를 지나 4세대로 가는 마당에 새로운 기술표준과 원천기술 개발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TFT-LCD 등 일부 기술은 민간에서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감하게 기술개발 투자를 해 성공한 사례"라며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등이 주도해 왔던 그 동안의 기술정책 활동에 대기업·벤처 등 민간 참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종합적인 산업체 의견 수렴 매커니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기술정책이나 뚜렷한 방향성 부재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모 통신사업자 기술개발 관련 한 관계자는 "중복 기술을 신 기술인양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도태기술을 양산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는 식의 백화점식 나열로는 원천기술이 부족한 우리의 실정에서 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라고 말한다.

또, 기술 상용화에 있어 사업자가 투자회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보장하고 장비, 부품 업체들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있는 보호정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천기술 개발에 있어서는 실패를 거듭할 수 있지만 상용화 기술에서의 실패는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 신중성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세대간을 뛰어넘는 기술정책 부활이 절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오길록 원장은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4K DRAM 개발 착수, 개인용 컴퓨터의 조립생산, 외국교환기의 일괄도입 등으로 대변되던 국내 IT산업이 지금은 국가성장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IT산업 성장의 핵심 원동력은 정부의 전략적인 연구개발 투자에 기인했다"고 말한다.

오 원장은 “그러나, 이미 IT 강국으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한 우리나라의 경우 종래의 '늦게 시작해 빨리 따라잡는' 발전모델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신개념의 '한국형 선순환 모델'을 개발해야 하는 발전단계에까지 도달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부가 핵심 기술개발 분야에서 고위험도의 미래 고부가가치 기술(High-risk, High-return)을 적극적으로 발굴·개발하고 이를 산업체가 그대로 이어받도록 하는 긴밀한 상호협동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ETRI는 차세대 기술정책의 일환으로 TDX, CDMA에 이어 신산업 기반을 창출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IT-BT-NT 융합기술 분야에서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4G 이동통신기술, 네트워크 슈퍼컴퓨터, EAL5급 정보보호시스템, 스케일러블 테라 엑세스 시스템 기술, 스마TV 등 5대 대형 국책과제를 추진 중이다. 올 연구사업 예산규모만 연구원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3천4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임주환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우리의 기술정책이 업계의 공정기술 혁신에만 매몰돼 있는 감이 없지 않았다"며 "이제는 우리가 먼저 어떤 기술과 표준을 개발할 것인지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후방산업과 연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임 총장은 또 "CDMA 이후 국가 생존권을 보장해 줄만한 근간 기술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우리는 CDMA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죠. 차세대 성장 에너지 창출을 위해 정부와 IT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의 활용을 촉진해 국내 서비스와 장비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토대로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우선, 이동통신, 초고속인터넷 등 세계 최고수준의 IT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기술표준을 만들고 세계 시장의 모범 사례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NGN 관련기술, 광가입자망 기술, 초고속 무선LAN, 4세대 이동통신 등 IT 서비스 발전 방향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선행 기술개발 투자를 통해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장비의 적기 공급 및 구매를 촉진하는 IT 서비스와 장비 산업의 선순환 발전구조를 강화하는 전략도 강조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나 벤처 업체들이 세대간의 표준기술을 개발하기에는 너무 위험성이 크고 투자비용도 많이 드는 만큼 이를 정부나 정부산하 연구소 등에서 주도적으로 앞서 개발해 이를 산업화와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3G 이동통신 산업이 지연되고 있는 지금 4G 이동통신 서비스에 대한 표준경쟁에 적극 참여해 향후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특히, 반도체 생산에 나노 기술을 접목해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방식을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인 기술 흐름이나 기술의 연계성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새로운 표준만을 정해놓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TTA 한 관계자는 "표준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 무조건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과거 일본이 아날로그 TV 시절에 디지털 HD TV 표준을 미리 정해놓았지만 이후 미국과 유럽방식이 나오면서 활성화되지 못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시장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기술흐름과 연계성을 면밀히 파악해 지금 우리의 통신 인프라와 후방 산업적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기술정책 방향을 잡는 게 관건"이라며 "주도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지만 독선이나 좌우의 시야를 좁게 가져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진호기자 jhj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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