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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HP시대-하] '한지붕 두가족'의 앞날은?


 

컴팩과의 합병에 성공한 휴렛패커드(HP)는 이번 주부터 명실상부한 합병 법인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지난 3일(이하 현지 시각)로 컴팩컴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통합 HP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 HWP였던 뉴욕증시 거래명 역시 컴팩을 반영해 HPQ로 바꿨다.

HP는 통합법인 주식 거래가 시작되는 7일 100대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제품 로드맵, 이양 계획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날 설명회를 통해 HP는 합병 이후 어떤 제품이 남게 되는 지, 또 어떤 제품들이 생산 중단하게 될 지를 발표하게 된다.

휴스턴에 자리잡고 있던 컴팩의 최고 경영진들도 팔로 알토의 HP 본부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또 이 달부터 컴팩 근로자들의 급여 명세서엔 HP 도장이 찍히게 된다. 이제 명실상부한 HP 직원이 되는 셈이다.

◆ 중요한 것은 비용절감이 아닌 점유율 확대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HP 경영진은 컴팩과의 합병에 성공할 경우엔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HP가 합병이란 초강수를 둔 것은 단지 ‘비용 절감’ 때문은 아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데이비드 요피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비용절감을 통해 상당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HP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는 “HP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HP의 사장 겸 COO를 맡게 된 마이클 카펠라스 역시 이 같은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그는 “중대한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 유일한 이유는 바로 리더십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피오리나를 비롯한 HP 경영진이 숱한 난관을 무릅쓰고 합병을 관철시킨 것은 바로 컴퓨터 산업의 ‘파워하우스’가 되겠다는 야심 때문이다. 이는 HP나 컴팩의 ‘홀로 서기’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양사 경영진의 공통된 상황인식 이었던 것.

이번 합병은 IBM이나 델 같은 라이벌을 뛰어 넘는 강력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이밑 바탕에 깔린 도박이었던 셈이다.

◆ 서로 다른 회사 융합 문제 어떻게 풀까

일단 외형적인 규모 면에서는 이 같은 야심에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윈도 서버 부문에선 단번에 1위 기업으로 부상했으며, 컴퓨터 서비스 부문에선 3위에 자리매김했다. 서버와 서비스 부문 역시 라이벌인 IBM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양사의 현 점유율을 그대로 가져간다는 가정 하에서 나온 전망이다. 서로 토양이 다른 두 회사를 하나로 만들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여기 저기서 도출되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엔 이 같은 전망 역시 유동적일 수도 있다.

피오리나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는 델에게 빼앗긴 윈도 서버 시장을 되찾는 것. 지난 2000년 서버 시장의 14%를 점유했던 델은 지난 해는 점유율을 17%로 끌어 올렸다. 반면 이 부문 리더였던 컴팩은 31%에서 27%로 줄어들었다.

고객 직판 시장을 파고들어 컴퓨터 가격을 낮추는 것 역시 통합 법인이 조속히 손을 봐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서로 토양이 다른 두 회사가 얼마나 잘 융합될 수 있느냐는 것. IDC의 시스템 소프트웨어 부문 부사장인 댄 쿠스네츠키는 인터넷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양사는 윈도2000, 닷넷 서버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자세로 접근해 왔다”고 주장했다. 클러스터링이나 유닉스 부문도 마찬가지란 게 그의 설명이다.

쿠스네츠키는 “그 동안 결정을 내리면 한 쪽 방향으로 집중했던 데서 이젠 다른 회사의 다른 플랫폼을 함께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월레스 컴퓨터 서비스의 러스 쉐드는 “이 과정에서 양사 직원간의 헤게모니 다툼 같은 것들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고객사들 중엔 벌써부터 자신들의 시스템을 관리해주던 직원이 남을 지, 혹은 떠날 지 등을 놓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 합병 발표 이후 추락한 주가는 되레 도움될 수도

‘통합 이후’는 이처럼 통합 작업에 비해 훨씬 어려운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합병 발표 직후 HP의 주가가 걷잡을 수 없는 폭락을 거듭한 것 역시 투자자들이 이번 합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처럼 주가가 폭락한 것이 되레 장점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어 눈길을 끈다. 스팬퍼드 번스타인&컴퍼니의 컴퓨터 애널리스트인 A. M. 사코나기가 대표적인 인물.

HP-컴팩 합병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던 사코나기는 지난 주 HP 주식에 대해 ‘매수 추천’으로 평가했다. 합병 발표 당시 23.21 달러를 호가했던 HP 주가가 최근 17.44달러로 25% 하락한 데다 경영진의 합병 노력을 높이 평가한 것.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HP의 경영 능력과 컴팩의 하드웨어를 결합할 경우엔 상당한 시너지를 누릴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표 초기 부정적인 전망 일색이었던 ‘합병 후 기상도’가 상당히 밝아진 셈이다.

투자자들은 숱한 난관을 이겨내고 끝내 합병을 성사시킨 피오리나의 뚝심에 대해선 상당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1천200명으로 구성된 합병 준비팀의 꼼꼼한 준비 역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오리나는 합병 이후 목표한 실적을 달성하는 부분에 대해선 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베거 인포메이션 테크놀러지 펀드의 빌 샤프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오리나는 합병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여줬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는 이제 조직 통합이란 ‘무시무시한’(hellacious) 과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 합병법인 실적 평가엔 18~24개월 정도 필요

HP가 컴팩 합병이란 승부수를 던진 것은 PC 부문의 역량을 거대 기업 데이터 센터 부문으로 쏟아 붓겠다는 야심이 깔린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이를 통해 고마진을 구가하고 있는 IBM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인 셈.

데이터센터 컴퓨팅이란 것이 거대 시스템 디자인 및 서비스 제공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HP가 기대하는 부분이다. 이는 현재 PC업계 최강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는 델 컴퓨터의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이란 것이 HP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비교적 냉정한 편이다. 메릴린치의 애널리스트인 스티븐 밀루노비치는 “비용절감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번 합병은 말이 되는 거래”라면서도 “하지만 이번 합병이 진정한 성공작으로 평가받으려면 명확한 시장 점유율 확대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합병 법인의 실적을 평가하기 위해선 18개월에서 24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용 절감이나 규모의 경제 등 단편적인 부분들은 그 때 그 때 파악할 수 있겠지만 합병의 진정한 성패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때쯤 되면 통합HP의 뚜렷한 성적표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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