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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정책 춘추전국시대-4] 디지털 경제, 아날로그 행정


 

세계 경제는 정보기술(IT)과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전자상거래 시대로 진

입하는 대변혁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중이다.

인터넷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및 커뮤니케이션 수단으

로 등장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디지털 혁명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노델 네트워크사가

발표한 디지털 경제 예상 규모를 보면 인터넷 확산에 따른 IT투자와 전자상

거래 증가로 디지털 경제는 2003년 전세계 총생산의 7%(2.8조 달러)를 차지

할 것으로 전망될 정도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디지털 경제를 위한 기반구축의 일환으로 정보화

및 디지털 산업 육성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경제의 특징을 간단히 요약하면 ▲IT산업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고, IT 산업 비중이 날로 확대된다는 것 ▲생산성 향상과 물가하락 현상이

전통 제조업(비 IT산업)으로 확산된다는 것 ▲IT기술인력 수요 급증 및 신

규직종이 등장한다는 것(미 상무성 자료 : The Emerging Digital Economy

Ⅰ,Ⅱ) 등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우리나라는 이미 상당 부분 디지털 경제 시대

에 접어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IT 산업이 전통 제조업의 경제 성장률을 뛰어 넘은지 오래고, 철강,

화학, 섬유는 물론 농수축산 등 산업 전 영역에서 e-비즈니스와의 접점 찾

기가 시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 신유통질서의 등장으로 기존 상품의 가격이 크게 하

락하는가 하면 IT 직종 종사자가 수없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이것도 모자라 여러 부처에서 IT 산업 지원 및 육성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두 말 할 필요 없는 '디지털 경제'의 모습이다.

그러나 경제가 디지털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부 정책 등 행정은 여전

히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지원,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행

정은 오히려 디지털 경제를 쫓아 가는 데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행정 실태와 변명들

정부 IT 행정의 난맥상은 이미 지적될 만큼 지적됐다. 난맥상의 형태도 업

무 중복에 따른 과잉투자를 비롯 여러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디지털 경제를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으로 IT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

데, IT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데이터센터(IDC)의 경우 각 부처

들의 업무중복 가운데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히고 있

다.

IDC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법상 부동산임대업으로 구분돼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부가통신서비스사업자로 분류되기는 했으나 그 이전에는 부동산임대

사업자로 분류, 수도권에 IDC용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300%의 등록세를 고

스란히 납부해 왔다.

IDC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력 공급이

IDC 서비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기의 중요

성이 강조되는 IDC는 아직도 일반용 전기요금을 납부, 막대한 누적요금을

적용 받고 있다.

산자부는 "생산물이 있어야 산업용 전기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원칙을 고

수하고 있으나 유형의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IDC 의 특성을 감안하

면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음성인식기술 개발 지원을 둘러싼 산자부와 정통부간 힘겨루기도 거세다.

산자부는 지난 2월 한국음성정보기술산업협회를 구성, 본격적인 음성인식기

술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가자 정보통신부도 지난 3월 음성정보처리산업협의

회를 구성, 총 1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문제 해결을 위해 양 부처는 지난 5일 전격 회동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려고 산자부 측을 만났지만, 아무

런 결말이 나지 않았다”며 “전자화폐, 전자상거래에 이어 이제는 음성정

보기술 분야까지 부처간 이기주의로 피해를 봐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 해 말부터 음성정보기술 산업 지원에 대

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센터나 협회 설립 외에도 장관과의 업

종별 간담회 등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돼 있는데 갑자기 정통부에서 딴지를

거는 의도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통부 관계자는 “우리 부에서는 91년부터 음성정보기술 분야에 대해 R&D

개발자금을 지원해 온 만큼 갑자기 뛰어든 것은 아니다”라며 “이미 ETRI

에서는 국책기술 개발과제로 상당히 많은 기술개발이 진행된 만큼 업체의

기술개발 지원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두 부처간 경쟁을 보면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안 보인다”

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또 IT분야 중소기업들이 아날로그 행정으로 지목하는 것 중 하나가 병역특

례 문제이다.

해외시장 개척과 기술개발을 위해 직원을 해외에 파견할 경우 이에 대한 병

역특례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디지털 경제에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길 없다.

또 콘텐츠를 개발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산업분류상 유통업체로 분류된

다. 이렇게 되면 기술개발이나 제조업체들이 입는 혜택을 못받는 것은 물론

이고 세금과 비용 등에서 중과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모두가 행정이

디지털 시대를 따라 가지 못하는 사례 중 일부일 뿐이다.

법 제정은 더욱 난감한 문제

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산업 주도권 확

보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콘텐츠산업 육성을 두고 벌이는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의 대결은

대표적이다. 이 두 부처는 각각 저작권법 개정과 디지털 콘텐츠산업 발전

법 제정을 들고 나와 입법을 둘러싼 의견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통부는 지난해 정동영 의원이 입법 추진하려다 좌절됐던 디지털 콘텐츠

육성법을 수정한 디지털 콘텐츠 산업발전법을 제정,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

의 투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디지털 콘텐츠는 기존 저작권법으로도 투자자를 보호

할 수 있으며, 미비한 부분은 개정 작업을 통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문화부는 지난 4월 저작권법 개정 공청회를 개최한데 이어, 최근 몇 차례

정통부 관계자와 조율 작업을 거친 바 있으나 디지털 콘텐츠 투자자의 보

호 범위와 방식을 놓고 서로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우선 보호범위를 놓고 문화부는 ‘상당한 투자’가 이뤄진 콘텐츠에 관해

보호해야 하며 이들에게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통부

측은 일부 예외 조항을 빼고 모든 디지털 콘텐츠를 보호해야 하고 이들에게

는 부정경쟁방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은 디지털 콘텐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외국

의 선례가 확실히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법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서 부처간 밥

그릇싸움으로 인해 졸속으로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편 문화부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

은 필수적”이라며 “정통부는 기술발전에 따른 콘텐츠까지 자신들의 몫이

라고 우기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물론 기술발전에 따른 관련 솔루션 등은 정통부의 관할이 맞지만 그에 따

른 다양한 콘텐츠들 - 디지털 영화, 온라인 출판, 인터넷 방송-은 문화적

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실 부처간의 갈등이라고 말은 하지만 문화부가 일방적으로 밀리

고 있는 모습”이라며 “돈 많이 가지고 있는 부처가 힘을 가지는 것은 당

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즉 정통부는 ‘정보화 촉진 기금’ 등 다양

한 예산으로 ‘부자 부처’임을 내세우면서 ‘오지랖 넓은 행동’을 보이

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보다 훨씬 더 큰 입법 분쟁도 있다.

정통부가 제정을 추진중인 'IT기본법'이 그것이다. 아직 이 법안에 대해 자

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법은 산자부의 '전자상거래기본법', '전

자서명법', 과기부의 '과학기술기본법', 교육인적자원부 등의 업무와 중복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부가 법안의 세부 내용을 공개할 경우 '회오리' 같은 논쟁과 분쟁이 예

상되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대강 알려진 바로는 'IT기본법'이 IT산업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

을 모두 담고, 대통령 직속으로 'IT산업자문회의'를 구성하는 방안까지 있

어 이 분야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각 부처간에 뜨거운 논란이 예상

되고 있다.

이처럼 정통부, 산자부, 문화부, 과기부 등 다양한 부처가 IT 관련 정책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만, 가장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곳은 단연

산자부와 정통부다.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간의 중복업무는 알려진 것

만 최소 10건 이상이다.

물론 IT 정책 주무부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양 부처간 경쟁은 나름대로 그

럴만한 배경이 없지는 않다.

정통부는 94년 출범 당시 발효된 정부조직법을 우선 앞세운다. 정부 조직법

에서 IT분야 전담 부처로 당시 체신부를 정통부로 바꾼 것처럼 IT의 영역

은 정통부 고유 영역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청와대는 정부 조직을 대거 개편하며 방송 영역과 소프트웨어 등 IT

업무를 모두 정통부로 집중시켰다. 당시 공보처와 과기부, 상공자원부의 관

련 인력들도 모두 정통부로 넘어 왔다.

정통부는 이런 관점에서 'IT공장론'을 주장한다. 정통부가 IT와 관련된 근

본 기술연구를 전문적으로 양산해 내면 다른 부처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져

다 쓰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산자부 입장은 다르다.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 산업 영역이 IT

화하면서 IT 영역은 자연히 산업을 총괄하는 산자부가 관할하는 것이 당연

하다는 것이다.

범 정부적 차원 IT 행정 조정기능 절실

부처간 IT산업 장악 싸움은 치열하지만 사실상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별

로 없다. 특히 중소 벤처기업들의 경우 더더욱 외롭다.

특히 각 정부부처는 서로 산업을 자기 부처의 수하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하고 있으나 다른 부처 산하에 있는 IT산업에 대해서는 지원은커녕 오히려

규제만을 강조하고 있는 꼴이다.

정부의 지원도 말로만 그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산품 사용을 장려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정부 발주시에는 스펙이 특정 외산업체에 맞춰져 있는 경우

가 많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정부 부처나 국공립대에서 발주 공고를

낼 때 공정 경쟁의 기회라도 얻을 수 있도록 특정 외산 업체에 유리한 스

펙 대신 범용 스펙을 제시해 주기만 해도 고맙겠다”고 정부 지원책의 실상

을 꼬집었다.

인터넷 벤처기업 관계자는 “지식기반경제, 디지털경제 등 경제환경이 역동

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경제부처의 관할권이 획일적으로 구분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부처간 갈등을 부추기는 산업 영역에 대한 조

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서간 협조가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 산업 활성화 정책과 관련해서는 산업자원부와 정보통

신부가 협력하는 것이 당연하며, 디지털 콘텐츠 산업 지원을 위해서는 문화

부와 정통부가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중소 제조업체 사장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굴뚝산업이라고 부르는 사업을 하는 전개하는 사람으로서 변화하는 흐름

을 따라잡기 위해 벌이는 노력은 처참할 정도”라며 “그러나 디지털 경제

로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정책은 중소 굴뚝산업만 못

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진정한 산업 장악력은 인위적으로 산하 단체나 업체들을 휘하

에 두려는 노력보다는 얼마나 해당 산업체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을 만들어 주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코리아의 현 주소는 그다지 디지털 시대 답지 않다.

특히 IT 행정이 아날로그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범 정부 차원의 업무

조정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inews24 특별취재팀 speci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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