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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정책 춘추전국시대 - 프롤로그] 디지털 코리아, 실종된 '정책 중심'


 

IT업체들이 '행정의 과잉'에 매몰돼 허우적거리고 있다.

IT행정이란 IT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이 갖추기 어려운 산업·경

제활동의 인프라를 채워주는 '충실한 지원군' 역할이 본령이다. 그러나 정

부 각 부처들은 너나없이 IT정책 양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 식이다. 'IT코리아'를 위한 마스터플랜은 실종되고, 부처

이기주의의 산물로서 'XX부의 정책'만 판치는 형국이다.

DJ정부는 'IT 강국'과 '벤처 경제'를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정권 말기,

우리 IT산업은 체질 허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벤처산업은 급전직하하

며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각 부처들이 벌이는 꼴은 '정책

선점 경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사 정책의 통합과 합리적 조정기능

은 완전히 마비됐다. IT정책에 관한 한, '정부 방임'이라고 하는 기막힌 현

상이 벌어지고 있다. IT정책의 무질서는 국가사회 정보화를 오도할 수 있

다. IT산업의 건강성을 해칠 수도 있다.

inews24는 이에 기획시리즈 'IT정책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IT정책 혼돈의

현장을 진단하고, 정부의 그늘에 가려 있는 민간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또

디지털시대에 바람직한 정부의 기능과 합리적인 정책 조정방안을 독자와 같

이 모색해 본다. 의견 제시와 제보는

href=mailto:special@inews24.com> special@inews24.com.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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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IT업계는 참으로 황당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의 중심이자 나라 정책의 제 1번지인 청와대에서 웃지 못할 사건

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관계 장관과 경제단체장, 업

계 대표 등 1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e비즈니스 확산 국가전략보고회

의'가 개최됐다. 차세대 유망 전략 산업인 e비즈니스의 발전을 위해 관계부

처와 산업계의 대표들 뿐 아니라 대통령까지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관련 부처가 모두 모이고 담당자들이

모두 모였지만 통일된 정책안은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다. 다만 '한 컨설팅

업체의 의견을 토대로 산업자원부가 만들었다'는 정책 초안만이 제시되는

데 그쳤다.

물론 이 정책 초안은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 과학기술부, 재정경제부

등 경제 관련 부처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끝내 실패한 것이었다.

"대기업·중소기업, IT 벤처기업, 민간단체, 정부가 합심해 산업의 e-비즈

니스화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나랏님의 말씀'은 부처간 힘겨루기

앞에서 공허하기만 했다. 회의 이전에는 '정책 초안에 우리 부처 이름을 빼

라'는 요청이, 회의 후에는 반성과 대책이 아닌 관계 부처들의 불만과 비난

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숱한 회의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이날의 논의는 IT업계에 씁쓸한 여운과 실

망감을 남긴다. 부처간 알력과 힘겨루기, 업무 중복을 그대로 드러내며 쓴

웃음과 자조만을 불러온다.

IT와 벤처 육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정권 출범의 의지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부처들간에는 풀지 못할 앙금만이 남아 있다.

정부 당국자들도 '매번 중복되는 업무 추진에 지쳤다'고 말한다. '대응논리

를 만드는데도 식상해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소모성 논쟁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거듭되는 중복과 난립에 일일이 쫓아다니기 바

쁘다. 이들에게 정부는 도움을 주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고압적인 시어머니

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불만과 하소연을 들어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담당 기관도

조정자도 중앙 행정부엔 IT 분야 수장이 없다.

숱한 중복에도 문제점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지 '코리

아'는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부처별 중복, '이제는 식상한 문제 제기'

'우리 나라 정보기술(IT) 산업의 주무부처는 어디인가'

열 중 아홉은 '정보통신부'라고 답할 것이다. 대충 맞는 답이다. 그런데

이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는 출발한다. 현실은 이

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열풍이 불면서 모든 부처가 IT를 주력분야로 육성하고 있다. 부처마

다 앞다퉈 사업을 벌이지만 대개는 다른 부처와 중복되는 것이다. 그렇지

만 마냥 '고(Go!)'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사활을 건 ' IT 땅따먹

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땅 따먹기'를 가장 심하게 벌이는 부처는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다.

해외 IT지원센터는 대표적 사례다. 정통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북경

에 해외 IT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데 이어 올해 중 4개 센터를 더 설치

할 계획이다.

이와 유사하게 산자부 역시 동경에 '한국IT벤처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

다. 어디에 입주하는 게 좋을 지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져 일부 업체들

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IT업체들은 대부분 혼란스럽다.

PDA 산업도 두 부처가 힘 겨루기를 하는 곳. PDA가 차세대 주력 정보통신기

기로 주목받자 그 동안 이 분야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두 부처는 최근 앞다

퉈 지원책을 내놓았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크기 전에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

겠다는 전략에서다.

파워콤 민영화 역시 두 부처가 첨예한 논리싸움을 벌였었다. IT 산업에 대

한 두 부처의 관점 차이 때문에 파워콤 민영화는 벌써 수개월 가량 표류하

고 있다.

부처 산하 협·단체를 통한 힘 겨루기도 대단하다. 최근 정보통신부는 'IT

벤처기업협회'를 신설하려다 이 계획을 무기한 유보했었다.

정통부 산하 IT분야 벤처기업의 모임인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PICCA)가 산

자부 산하 벤처기업협회에 영향력이나 회원 수에서 밀린다고 보고 이를 능

가한 협회를 만들고자 했다는 후문이다.

정통부는 특히 4천여개에 달하는 IT분야 벤처기업 가운데 PICCA 회원사가

600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참지 못했다.

이 뿐이 아니다. 두 부처 산하에 중복되는 대표적인 협·단체만 해도 20여

개에 이른다.

우선 정보통신기기 분야에서는 전자산업진흥회(산자부)와 정보통신진흥협회

(정통부)가 대립하고 있고 정보가전 분야에서도 인터넷정보가전산업협의회

(정통)와 디지털가전산업협의회(산자)가 충돌하고 있다.

산자부와 정통부가 기싸움을 벌이는 백미는 'e비즈니스'다. 정통부와 산자

부는 거의 매번 이 분야에서 충돌한다.

정통부와 문화관광부의 '콘텐츠 싸움'도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문화부는 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이 원래 문화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통부는 디지털 콘텐츠는 IT 분야에서 관장하는 게 맞다는 설명이

다. '디지털 콘텐츠법'과 '저작권법'은 이같은 논란의 산물이다.

정보통신부와 과기부 사이에도 갈등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두 부처는 IT 관련 기반기술 분야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으며 특히 벤처기

업 연구자금 지원과 관련해서는 중복의 도가 심해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지

적을 받기도 했다.

제 2의 반도체 산업으로 불리는 바이오벤처산업 육성에서는 과기부와 산자

부가 대립하고 있다.

바이오는 과기부가 주로 관장해 왔지만 최근에는 신국환 전 산자부 장관이

관련 업계를 직접 방문하기까지 하는 등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후문이다.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업계

정부 부처간 중복 경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해당 기업체들이다.

일부 분야의 경우 누가 봐도 똑같은 사업을 두고 필사적으로 겨루는 정부

부처들을 업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업체들은 누구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지적한

다.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도 해야 하고 정부 눈치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정신

을 못 차릴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전자화폐 분야에서 벌어진 업무 중복은 업계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한국전자화폐포럼이 정통부 산하로 들어가는 과정과 산자부

가 전자화폐표준화포럼을 지난 달 설립,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서 시작됐다.

새로운 지불수단으로 전자화폐가 부상하면서 민간 업체들이 지난해 5월 한

국전자화폐포럼을 설립했으나 이 단체가 '정통부의 압력으로' 산하단체가

된 것이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초기 회장과 사무국장이 알력다툼으로 자리를 떠나고 새로운

회장과 사무국장이 부임했다. 특히 새로 부임한 사무국장은 정통부 출신의

공무원이어서 '모종의 결탁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기에 산자부가 비슷한 단체를 설립했다. 지난달 '전자화폐표준화포럼'이

란 단체를 만들어 사실상 정통부와 전자화폐 분야에서 '선전포고'를 한 셈

이다.

결국 정통부와 산자부의 싸움 사이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민간 업체들 뿐

이었다. 전자화폐란 분야에서 두 부처가 표준을 만들고 업계 이익을 대표하

겠다는 단체를 만들어 수시로 회의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감히' 정부의 요구를 거역할 수 없는 형편인데다, 한 단

체만 가입하면 나머지 단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두 단체에 가입해야만 하는 실정.

두 단체에서 소집하는 각종 모임도 문제지만 정기적으로 내야 하는 회비도

그렇고 업계는 이중 지출에 쓴웃음을 짓는다.

비단 이들은 이중 부담만을 걱정하지 않는다. 중앙 조정 기능이 상실된 지

금 업계를 기다리는 제3, 제4의 시어머니가 더 큰 걱정이라는 지적이다.

/inews24 특별취재팀

speci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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