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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가자 세계로/도쿄리포트-마지막회] "재일교포가 최고의 네트워크"


 

"재일교포가 최고의 인적 네트워크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업체들은 일본 법인을 이끌

어갈 핵심 멤버로 재일 교포를 등용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외교통상부의 자료를 인용해 "일본 곳곳에 있는 70만명 정도의 재

일교포를 활용할 수 있다면 일본 진출에 날개를 달 수 있다"는 의견에 동

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재일교포에 대한 좋은 예로 드는 것은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재일 교포 3세로서 일본에서 성공한 손 회장은 한국인의 적극성과 일본인

의 추진력, 미국인의 비즈니스 감각으로 무장한 승부사다.

일본 진출 업체들은 "재일교포들이 대부분 손회장처럼 일본과 한국 양쪽

을 알고 있는 인재"라며 "재일교포라면 한국기업의 일본화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 재일교포는 일본인 주류 사회에선 소외됐지만 일부 분야에선 오히려

일본인을 소외시킬 정도로 성장해 있다.

우선 연극분야에서 재일교포 3세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극단 '신주쿠 양산

박'을 들 수 있다. 이 극단은 1994년 일본 '헤이세이(平成)예술상'을 수

상하며 '일본 연극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계도 비슷하다. 최양일 감독을 포함한 재일교포 스탭들은 '달은 어느

쪽에 떠있나'와 '개 달리다'란 영화로 일본을 강타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서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히트하는지 누

구보다 잘 알고 있다. 즉, 핏줄은 한국을 따르지만 머리는 일본을 따르는

그들은 니혼진무키(일본인 취향)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

요즘은 재일교포 사회에 벤처분야의 창업이 급증하며, 현재 재일교포가 운

영하는 벤처기업수가 1천3백여개에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외국에 가면 한국사람을 조심하란 말이 있다"며 "재

일교포는 어려서부터 차별받아서 그런지 어딘가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일교포들은 "사춘기때 여드름이 나듯 성장기에 한번쯤 거쳐가

는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성공한 재일교포의 대명사인 손정의 회장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손정의 회장은 16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 일본식 이름(通名)

을 잠시 버리고, 한국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일은 아주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가 재일교포로서 격어야만 했던 차별과

설움을 이기고 정체성을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17세까지 그의 이름은 '야스모토 마사요시'로 시가현 재일한국인 집안에

서 4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부는 일제시대 대구에서 규수에 건너온 탄광노동자였으며 부친이 파친코

와 음식점 사업으로 성공, 유복하게 생활했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승용차

를 산 것도 그의 집이었다.

유치원 때 동네 소년이 "조센진"하며 돌을 던졌다. "머리에서 피가 쏟아졌

지만 한국인이라 맞는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재일 한국인의 운명을 처음 실감한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교사

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공립학교 교사는 일본 국적이라야 한다는 말을 듣

고 또 한번 좌절했다.

성인이 된 92년 그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임을 줄곧 숨겼지만 항

상 마음 한구석이 어두웠다"고 소년시절을 회상했다.

재일교포는 정상적인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일본 주류에서도 일류급에 속하는 교토(京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모

재일교포는 취업이 안돼 토목 건축업을 하고 있었다.

취업이란 밥먹고 살려고 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취업은 한 사람이 12년 이

상의 교육을 마친 후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인정받는 시작점이란 의

미가 있다.

따라서 일반 기업으로의 취업기회가 적은 재일교포들은 파친코(パチン

コ), 불고기집(燒肉屋), 고물상, 토목 건축업, 운수업 등 자영업을 열거

나 가수, 배우, 운동선수, 소설가, 영화감독 등 자유업에 종사하는 경우

가 많았다.

손정의회장이 지금의 소프트뱅크를 만든 것을 이러한 차별을 이겨내기 위

한 도전의 과정으로 풀이해도 무리는 아니다.

재일교포들은 "이렇게 차별을 받다보니 반발심이 발동해 우리 민족에 대

한 자부심이 더 강해진다"며 "작은 반항을 거듭하면서 제대로된 민족 의식

을 다듬는 게 재일교포들의 삶"이라고 입을 모았다.

e코퍼레이션재팬의 염종순사장은 "재일교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방식이 차단됐던 만큼이나 주류 사회로 도약하려는 의지가 강하

다"며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면 재일교포는 온힘을 다

해 자신을 바치는 승부사로 변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니혼진무키(일본인 취향)을 가장 잘 아는 그들을 통해 일본 시장

에 진출한다면 문화 차이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빠르게 현지화할 수

있는 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재일교포에 대한 설명이다.

◆ 재일교포는 누구인가

해방 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계속 일본에 사는 한국인 및 그 후손들.

해방 후 일본에 유학 또는 취직하는 방식으로 정착한 한국인은 '체류 한국

인'이며, 일본인 혹은 재일교포와 결혼해서 일본에 정착하는 경우엔 '뉴커

머(new comer)'로 구분된다.

재일교포라는 명칭은 한국에서만 쓰는 용어이며, 일본에서는 '자이니치간

코쿠징'(在日韓國人), '조센징'(朝鮮人)이라는 용어로 쓰인다.

'조센징'을 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일본어로서 '조센징'은 꼭 멸

시감이 내포된 말은 아니다.

한국국적인 교포는 '간코구징'이고, 조선국적인 교포는 '조센징'이다. 이

런 문제 때문에 교포들 사이에서는 '도호'(同胞)라는 말이 사용된다.

◆ 재일교포의 국적

재일교포는 한국계와 북조선계로 나뉜다.

하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在日本大韓民國民團)이고, 다른 하나는 '재

일본조선인총연합회'(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흔히 한국 국적은 남한 사람, 조선 국적은 북한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경우

가 많지만 틀리다.

조선 국적 교포는 전체의 27.5% 정도라고 추측되는데, 북한 출신자들은

전체 교포 중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정부는 일제시대동안 한국인의 국적을 '일본'으로 했으나, 45년 해방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조선' 국적을 부여했다.

이때 한국과 북한 모두 정부를 수립하지 못해 '조선'이란 말은 '한반

도'(朝鮮半島) 출신자라는 뜻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48년에 남북한 정부가 따로따로 들어섰고, 교포의 국적란에

는 '한국'과 '조선' 두 가지가 생겼다.

1965년 한일협정 발효 후 일본이 한국을 정식으로 인정하자, 한국 정부는

조선국적 교포들에게 한국으로 국적을 바꿀 것을 강요했다.

반면, 북한과 외교를 맺지 않은 일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인정

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북한 국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

라서 한국 국적은 '대한민국 국적', 조선 국적은 '조선반도 출신자'란 의

미며, '조선' 국적이 북한 국적과 동일한 뜻이 아니다.

◆ 재일교포의 일본식 이름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다.

일본식 이름은 '니혼메이'(日本名)'이자 '츠메이'(通名)로 불리고, 한국

이름은 '혼묘'(本名)라고 한다.

교포들이 사용하는 '츠메이'의 기원은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에서 유래됐으

며, 민족의 혼을 지키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일반적으로 교포의 '츠메이'에는 '가네(金)×'와 '×모토(本)'란 형식이

많다.

김씨는 가네모토(金本), 가네코(金子), 가네다(金田), 가네무라(金村),

가네미츠(金光), 가네야마(金山), 미츠야마(光山)와 같은 일본식 성을 쓰

는 사람이 많다.

가네모토(金本)는 '김씨(金)가 본명(本)'이란 의미이며, 가네미츠(金

光), 가네야마(金山), 미츠야마(光山)는 본관이 광산(光山) 김씨란 뜻이

다.

이씨(李氏)에는 구니모토(國本)가 많은데 이것은 '국왕(國)의 본관

(本)'이란 뜻이다.

박씨(朴氏) 성은 아라이(新井)가 대다수이다.

아라이를 사용하는 교포는 모두 밀양 박씨인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우

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신라(新)의 우물(井)'이란 뜻으로 지은 성씨다.

◆ 재일교포 분포 통계(중심 도시 기준)

width=98% bordercolor=#CCCCCC>

bgcolor=#F0F0F0 bordercolor=#CCCCCC>지역

bordercolor=#CCCCCC>도쿄

bordercolor=#CCCCCC>138,650

bordercolor=#CCCCCC>21.00

align=center>

bordercolor=#CCCCCC>고베

bordercolor=#CCCCCC>77,976

bordercolor=#CCCCCC>11.81

align=center>

bordercolor=#CCCCCC>요꼬하마

bordercolor=#CCCCCC>48,999

bordercolor=#CCCCCC>7.42

align=center>

bordercolor=#CCCCCC>히로시마

bordercolor=#CCCCCC>29,849

bordercolor=#CCCCCC>4.52

align=center>

bordercolor=#CCCCCC>센다이

bordercolor=#CCCCCC>11,130

bordercolor=#CCCCCC>1.69

align=center>

bordercolor=#CCCCCC>총계

bordercolor=#CCCCCC>660,214

bordercolor=#CCCCCC>100

class=text>인원수(명)

bordercolor=#CCCCCC>백분율(%)

오사타

size=2>233,847

size=2>35.42

나고야

size=2>70,582

size=2>10.69

후쿠오카

size=2>31,611

size=2>4.79

니카타

size=2>11,487

size=2>1.74

삿포로

size=2>6,083

size=2>0.69

*단위 : 명, 출처 : 외교통상부 1999년 자료

/박형배기자

art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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