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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래 셰프 "한국식 中요리, 10년 내 신세계 연다"


중식조리사 세대교체…한국인 셰프들 익숙한 중식에 새바람 불어와

[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유년시절 학교 앞 중국집을 지나칠 때면 특유의 고소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던 기억,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허기지게 만드는 이 고소한 냄새는 춘장을 볶는 향으로 주로 자장면(炸醬麵)을 만들 때 난다. 자장면이란 장(醬)을 기름에 볶아(炸) 국수(麵)에 얹어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식당에 가도 이 같은 냄새를 맡기가 어려워졌다. 제조사에서 볶은 춘장을 팔다보니 중식당에서 별도로 장을 볶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라진 게 어디 냄새뿐일까. 담백한 맛에 기름기가 적고 향도 세지 않은 음식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춰 중식도 나날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중식 특유의 색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는 '당연한 순리'라고 말한다. 중국인이 선정한 100대 조리명인인 여 셰프는 "가정집마다 밥맛이 다르듯 중식도 지역과 재료,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며 "앞으로 한국식 중식은 지금과는 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경력 41년의 여 셰프는 2005년 국제 중국요리 마스터 셰프 타이틀을 얻었다. 국제중국요리명인 교류협회에서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인 여 셰프는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직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가 오너 셰프로 있는 그랜드앰배서더서울호텔 중식당 '홍보각'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 등재되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력들만 봐도 그의 요리인생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구애로 최근 스타필드 고양에 중식당 '루이'를 열었다. 대규모 복합쇼핑몰에 매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 거의 매일 홍보각과 루이를 오가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호텔 중식당과 상업시설 내 식당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동안 여러 식당을 운영했지만 복합쇼핑몰 내 매장은 또 다른 신세계입니다. 회전율이 높아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니 음식 구성부터 호텔과는 다를 수밖에 없죠. 서울지역이 아니다보니 팀을 꾸리는 것도 어려웠죠. 무엇보다 '종일반점'이라 부를 정도로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보니 체력적인 부담이 컸습니다."

익숙치 않은 운영방식에 체력적인 한계 속에서도 그는 고집스레 주방을 지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드넓은 중식의 세계를 소개하겠다는 목표 때문이다. 이번 매장도 그가 수 십 년 전부터 추구해온 '중식 대중화'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곳에서 그는 대중적인 메뉴 외에도 불도장·전가복 등 자신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중식의 대중화란 무엇일까. 여 셰프는 "예컨대 자장면처럼 한자 뜻을 알면 어떤 요리인지 쉽게 알 수 있고 맛도 더 좋게 느껴진다"며 "한층만 더 내려가면 알 수 있는 게 많은데도 사람들은 '중식은 짜다, 건강에 안 좋다, 하찮다'고 생각해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특히 한식·일식·양식·중식 중 중식이 제일 평가절하 돼 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는 중식에 MSG가 많이 들어간다는 세간의 오해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여 셰프는 "예컨대 짬뽕을 만들 때 해산물과 고기, 채소를 고춧가루와 함께 볶아 오랜 시간 끌이다 보면 진국이 우러나와 감칠맛이 나는데, 이를 조미료 맛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며 "제가 중식 전부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요리하다보면 중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전향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여 셰프는 앞으로 한국식 중국요리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화교들을 중심으로 국내 중식 문화가 발전했다면 앞으로는 한국인이 풀어내는 중식이 보편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과거 중식이 '한국인 불모지'로 여겨졌던 점과 비교화면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실제 일반 중국집은 물론 호텔 중식당에서도 한국인 조리사들이 느는 추세다.

"예전에 중식을 이끌었던 화교 세대가 어느덧 중장년층이 됐습니다. 이들의 공백은 전국 150여개 조리전문학교에서 양성한 한국인 조리사들이 채우고 있죠. 중식이 한국에 들어온 지는 100년이 넘었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날 겁니다. 젊은 조리사들은 많이 배우고 서비스 마인드도 남다르기 때문에 아마 새로운 장이 펼쳐지겠죠."

이런 점에서 그는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시간을 쪼개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것은 물론 실력 있는 학생들을 국제 요리대회에 출전시키는 등 젊은 조리사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129년 전통의 홍콩 소스 기업 '이금기'가 지난 11년간 국내에 연간 7억원씩 투자하며 '대학생 중국요리 경연대회'를 벌이는 것도 여 셰프의 공이나 나름없다.

이금기의 조리 고문인 여 셰프는 "한국에서 중국요리 대회를 하기 위해 10개년 개획을 짜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이금기가 고문 요리사 자격을 제안해왔다"며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대학생 요리대회를 할 수 있게 된 점이 최고로 기뻤다. 10년 넘게 이어진 이 행사가 분명 한국 외식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식당이 자리 잡는 데는 5~10년이 걸린다. 산전수전 우여곡절을 다 버텨내야 그 음식점의 저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모두들 얕보는 자장면도 100년이 넘은 음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시간이 주는 의미는 참 의미심장하다. 이번 매장에 지난 40년간 쌓아온 경험적 요소를 모두 담겠다"고 말했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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