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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가건물, 공터를 숲으로 가꿔야"


소설가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캠프…칠곡서 독자 100명 만남

[이야기경영연구소 김하영기자] "우리 역사는 엉거주춤 서 있는 가건물 같아요. 이제 우리의 고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저 개인으로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최근 '공터에서'를 낸 소설가 김훈은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촛불 시위로) 지난 겨울 가건물이 하나 또 무너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일과 2일 독자와 칠곡 주민 100여명이 모여 소설과 인생,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김훈 작가의 작품을 낭독한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캠프' 현장에서다.

이날 김훈 작가는 "내가 중학교 때 국민소득이 8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며 "길거리에 자동차가 넘치는 지금과 같은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국사기에 항상 밥 굶어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금 더 길게 보면 고조선부터 내가 고등학생 때가 밥 굶어 죽던 시대였고, 그 이후에 밥을 굶지 않는 시대, 역사를 두 시대로 나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내면서 엄청난 실수를 했다. 비리와 억압, 차별, 부정부패다"라며 "지난 겨울 거대한 가건물이 무너졌지만 정치 권력이 바뀌었다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사회악과 먹이 피라미드의 완강한 토대는 서로 엉켜 있어 무 뽑듯 뽑을 수 없다. 깔려 있는 70년의 적폐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소설의 제목을 '공터에서'로 정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이육사는 '광야'라고 했고, 당시 몇몇 지식인들은 '폐허'라고 했으며, 소설가 최인훈은 '광장'이라고 했다. 김훈에게 한국 사회는 언제고 무너지고 마는 가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는 '공터'인 셈이다.

김훈 작가는 "공터를 모든 사람이 쉴 수 있는 숲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데, 우리 밑에 깔린 업보들이 아직 너무 많다"며 "한꺼번에 뽑아버릴 수도 없고 격렬한 저항에 부닥치겠지만, 하나씩 분해를 해서 제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문주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기자 출신인 김훈 작가는 최근 일산의 짬뽕집을 비교해 관찰 중이다. 한 곳은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간 9천원짜리 짬뽕집이고, 한 곳은 스프로 낸 국물이 목을 긁고 넘어가는 3천원짜리 짬뽕집이다. 3천원짜리 짬뽕집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에는 밤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빈 속을 채우는 이들,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에 속을 든든하게 하려는 이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김훈 작가는 이를 '비극적인 풍경'이라고 했다. 돈이 있는 자는 9천원짜리 짬뽕을 먹고, 돈이 없는 자는 3천원짜리 짬뽕을 먹는 것에 대해 경제학에서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합리적이고 건전한 현상이라고 표현을 한다. 이를 두고 경제학적으로 시비를 걸 수 없지만 과연 이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모습인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권력이 있는 자들이 더 이상 채찍을 휘두르지 않아도 돈이 없는 자들은 어쩔 수 없이 3천원짜리 짬뽕을 먹는다"며 "현대 사회의 거래에는 약탈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를 수치로 증명할 수 없지만 내가 가진 혐의는 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며 "인문주의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훈은 이와 같이 일상에서 보는 풍경과 삶을 어떻게 소설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종일 관찰하며 "정말 신이 났다"고 했다. 호랑이를 창으로 찌르고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잡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오로지 육체적 삶의 현실과 생활만이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김훈 작가는 암각화를 보면서 1만년 전 건장한 사내들이 배를 타고 먼바다에 나가 고래를 사냥하고 사냥 후에는 마을로 돌아와 고래를 해체하고 고기와 기름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암각화는 기호와 추상, 관념, 이념이 개입되지 않은 일상의 구체성을 보여주는 순결한 그림"이라며 "이런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과 내 소설을 밀착시켜 나가는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소설캠프는 칠곡군이 주최하고 해냄의 후원을 받아 이야기경영연구소가 주관했다. 김훈 작가의 강연 외에도 한겨레 최재봉 기자와 함께 하는 문학 토크, 북뮤지션 제갈인철의 콘서트, 참가자들의 김훈 작품 낭독 경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함께 열렸다.

/이야기경영연구소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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