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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독식, 세계 IT 산업이 흔들린다


애플式 생태계 이대로 좋은가(상)

애플은 IT 시장에서 혁신의 화신이었다. 아이폰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고 PC 시대를 모바일 시대로 전환시킨 주역이었다. 특히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제2 벤처 붐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제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애플式 생태계 속에서 애플만 승승장구하고, 경쟁업체는 물론 부품, 세트조립 등 주요 협력업체까지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앱 생태계 또한 지나치게 폐쇄적이어서 개발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했다고 각광받던 애플이 이제는 IT 생태계 파괴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아이뉴스24는 애플 생태계가 갖는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박영례기자]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 애플을 따라다니는 수사(修辭)다. 이 수식어는 괜한 칭송이 아니다. 지난 1일 종가 기준 애플 시가총액은 총 5천600억달러(한화 약 610조원)였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2천484억달러)와 구글(2천253억달러)은 물론 HP(275억달러), 페이스북(459억달러), RIM(45억달러)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한때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가 불과 10여년 만에 이룬 기념비적인 일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고유의 '생태계'로 세계 IT 산업의 지도를 단숨에 바꿔버린 결과다.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하드웨어에 iOS, 앱스토어와 같은 플랫폼과 콘텐츠로 구성된 애플 생태계는 IT 산업 역사상 파괴력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인식됐었다.

문제는 그 생태계의 폐쇄적인 속성이다. 아이폰 등장 후 5년여가 지나면서 세계 각국의 언론과 IT 기업들은 애플 생태계가 갖는 독소적 요소를 깨닫기 시작했다. 잘 만든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장터를 결합시킴으로 '애플 왕국'을 구성한 뒤 그 독점력을 근거로 부품과 콘텐츠 업체들을 압박하는 게 대표적인 애플의 독소다.

전반적인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도 애플만 해마다 100%를 웃도는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반면 애플에 시장을 뺏긴 기존 휴대폰 및 PC 업체의 몰락은 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고, 부품과 애플리케이션 협력업체들 또한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 MS, HP, RIM의 1년간 주가 동향

기존 휴대폰 및 PC 업체들이 몰락한 것은 물론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포스트 PC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이로 인해 애플의 독식 구조가 급격히 강화되고 세계 IT산업 전반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왜곡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을 놓고 볼 때 애플은 스마트폰의 영업이익과 태블릿의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쟁 업체 대부분이 부실해지고, 세계 부품 업계는 애플만 바라보며 애플 독점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이 전개될 판이다.

미국의 유명 IT블로그인 아심코(asymco)를 운영하는 모바일 전문가 호레이스 데디우는 애플 혼자 질주하고 있는 휴대폰 시장을 가리켜 "노키아, RIM, 모토로라 등 경쟁업체에는'지옥행 고속도로(The highway to hell)'가 되고있다"고 빗대기도 했다.

◆애플 독식에 흔들리는 세계 IT 산업

애플의 시장 독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태블릿 PC 분야에서는 애플의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했었고, 휴대폰 시장에서는 이익의 대부분을 애플이 가져가고 있다.

애플은 3분기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6.3%에 불과했지만 이익에서는 업계 전체의 절반이 넘는 59%를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기간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애플의 4배가 넘는 25.6%에 달했지만 이익비중은 이에 턱없이 못미쳤다. 그나마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외에 의미 있는 이익을 낸 곳은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매 분기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가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시장을 잠식당한 기업들의 부진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애플은 달력 기준 3분기에 매출 360억달러에 순이익 82억달러를 거뒀다. 1년전에 비해 각각 27%와 24% 늘었다. 애플에 시장을 내준 기존 휴대폰과 PC 업체들의 실적은 동반악화되는 형국이다.

노키아는 이번 3분기에도 10억유로(한화 약 1조4천700억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기록하며 6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매출은 전년보다 또다시 20% 가량 줄었다. RIM 역시 같은기간 매출은 31% 가량 감소했고 지난해 3억달러를 웃돌던 순익은 2억3천5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모토로라 인수 비용에 모바일 시대 광고 매출이 줄어든 구글 역시 3분기 순익에서 20%대 역성장을 기록했다.

아이패드 등장 이후 PC수요 감소 및 태블릿PC 잠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기존 PC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였던 HP는 이번 3분기(5~7월) 89억달러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하며 분기기준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내놨다. 전통의 PC 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도(MS)도 PC 수요 위축으로 7∼9월 순이익이 전년보다 21% 급감한 44억7천만달러에 그쳤다.

반도체를 공급하는 인텔이나 AMD, 삼성전자 등도 부진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텔의 지난 3분기 매출과 순익은 각각 134억6천만달러와 34억 7천만달러. 역시 전년보다 각각 14%와 5.5% 줄어든 규모다. AMD는 3분기에 1억5천700만 달러 순손실 기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익 역시 1년새 38% 하락했다.

노키아 RIM은 물론 HP, AMD 등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이 잇단 감원에 나서면서 애플 독식에 따른 차가운 칼바람이 IT 산업 전반을 엄습하는 형국이다.

◆애플 생태계, 애플만 살찌운다

이는 애플 생태계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애플은 삼성보다 스마트폰을 적게 팔고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 이번 3분기에도 애플의 영업이익율은 30.5%. 삼성전자는 매출에서는 이미 애플을 압도했지만 영업이익률은 절반 수준인 15.6%에 그쳤다.

1년에 1개 모델만 내놓는 프리미엄전략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경쟁력 등이 애플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위한 방법론으로 한때 칭송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애플 협력사에 악몽이 되고 있다. 원가 경쟁력을 위해 협력사에 대한 단가 인하 등 압박이 거센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제품의 생산기지가 된 혼하이의 중국 폭스콘이나 애플에 메모리, 패널, 카메라를 공급해온 부품 산업에는 이 문제가 이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태다. 공급을 안 할 수도 없고 공급을 한다 하더라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덕분에 지난 5년간 영업이익률이 2배 이상 증가, 30%를 넘어선 반면 폭스콘은 아이폰을 생산한 2007년 6월부터 영업이익률이 되레 감소, 아이패드를 공급한 2010년 4월 이후 더욱 줄었다. 폭스콘이 애플 물량 확대를 위해 제조단가를 낮춘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블룸버그는 "애플 마진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생산하는 폭스콘의 제조 단가 인하로 크게 상승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낮은 제조원가를 유지해야 하는 폭스콘은 최근 3년간 임금 등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근로자의 자살, 파업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플의 부품 협력사와 애플 제품 판매를 담당하는 이동통신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애플은 사양을 높인 최신모델을 내놓고도 출고가는 이전 모델과 같은 수준을 책정, 소비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 이같은 가격구조 이면에는 협력사에 대한 소위 '단가 후려치기', 이통사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이라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일례로 D램익스체인지 및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최근 출시된 아이폰5는 높은 사양에도 64GB 기준 총원가는 238달러로 전작인 아이폰4S의 254달러 보다 오히려 더 낮아졌다. 이는 디스플레이와 AP 등 사양을 높인 일부 부품을 제외하고 낸드플래시나 D램 가격이 전작보다 50% 가까이 낮아진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부품공급사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 부품 공급가를 지속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애플의 시장독식과 경쟁업체의 퇴출로 거래선을 잃은 부품업체에 대한 애플의 가격통제력 강화, 협력사의 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 제품에 AP와 패널 등 핵심부품을 공급해온 삼성전자가 단가 문제로 공급을 중단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애플 대신 아이폰에 판매 장려금, 이른바 보조금을 쏟아부은 이통사들도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폰4S 출시 후 미국 양대 이통사인 버라이즌과 AT&T는 각각 그해 분기 20억달러와 67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통사들이 보조금 탓에 수익성이 악화되는 반면 애플은 이를 통해 수익을 보전했다는 지적도 있다. 애플이 약정계약 시 할인받을 수 있는 금액까지 제시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CLSA 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 아이폰 1대당 이통사들이 지급한 보조금은 약 400달러로 추산됐다. 또 애플 수입의 42%는 이 보조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이통사들의 아이폰 보조금 폐지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유럽 최대 이통사인 보다폰과 텔레포니카는 아이폰 보조금 폐지를 천명한 상태다. 국내 KT 또한 아이폰에 대한 보조금을 확 줄일 것이라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앱 게재와 관련한 까다로운 규칙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지나친 강제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애플은 자체 가이드라인를 운영하며 개발자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앱스토어 등록을 거부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핵심 콘테츠를 자체 개발, 기존 콘텐츠를 대체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의 구글 맵이나 앞서 논란이 됐던 어도비 플래시 거부 등도 그 단적인 예다.

더욱이 애플은 지난 2010년 아이패드를 발표하며 하퍼콜린스 등 미국내 5대 출판사와 담합, 전자책 가격을 올린 혐의도 받고 있다. 애플 측은 가격을 조정해주는 대신 30%를 수수료로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MS는 윈도7으로 자사가 1달러를 벌 때, 다른 업체는 18.52달러를 벌게 했다"며 "반면 애플 경제에서 살찌우는 자는 오로지 애플 뿐"이라고 일갈했다.

독일 슈피겔지 역시 "매분기 애플이 기록하는 엄청난 매출과 이익 이면에는 폐쇄적인 독식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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