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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IT서비스 'DNA를 바꾸려 해도…'


[IT서비스 생존 법칙 DNA를 바꿔라]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김관용기자]'DNA를 바꾸려 해도...'

IT서비스 기업들이 DNA 변경까지 검토하게 된 데에는 '자구책 마련'이라는 절대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 IT서비스 기업들의 공공 정보화 사업 참여 금지와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재벌 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는 IT서비스 기업들이 신사업을 발굴하고 해외 시장으로 서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IT서비스 기업들에겐 상처가 크다.

태생 자체가 '그룹의 전산실 통합'이었지만 IT서비스 기업들에겐 이어지는 규제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말라'는 압박과도 같이 가혹하게 느껴졌다.당연히 해야 할 그룹의 정보화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외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시장 왜곡의 주범으로까지 지목되자 상처 역시 컸다.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구현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IT서비스 기업들이 담당했던 정보화 업무는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만한 일이나 '돌아온 대가는 규제와 지탄 뿐이었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주요 IT서비스 기업들은 총수 일가 지분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시스템통합(SI)은 재벌의 부당 증여와 상속을 위한 수단'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규제당국의 되풀이되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조사도 감내해야 할 아픔이었다.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IT서비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탈(脫) IT서비스'를 선언했다. 이종산업에 IT를 접목시켜 IT융복합 모델을 적극 발굴하고 IT와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로도 진출하며 기업 DNA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는 규제와 비난이 많다보니 이들의 관심은 해외에 집중돼 있다. 시장 규모가 더 크고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해외 시장에 주력하며 더 이상 눈치도 보지 않고 회사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IT서비스 시장 '공동화' 우려

하지만 IT서비스 기업들의 비(非)IT 영역 진출과 해외 시장 개척은 그 취지에 대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공동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에 의존해 왔던 공공 IT서비스 시장은 특히 이같은 우려가 많은 분야다. 정부 기관의 일부 담당자들은 '당장 올해부터 국가 정보화 사업을 맡길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역시 눈치를 보고 있다.

대기업들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 이후 아예 공공 사업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 있고 중견중소 기업들은 갑작스런 사업 변경과 인력 부족으로 중대형 사업보다는 100억원 미만의 사업을 선호하고 있다. 사업이 대형화될 경우 투입되는 비용이 만만찮고 사업 관리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자칫 수익보다 적자만 남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중견 IT서비스 업체 한 관계자는 "공공사업에서 100억원 이상의 규모가 될 경우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크고 사업 범위 또한 넓어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서 "당분간은 80억원 미만 사업 위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한 공공기관이 발주한 종합정보망 구축 사업에는 참여 사업자가 없어 유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260억원 규모의 이번 사업은 대기업 참여 예외 사업으로 지정됐지만 수익성을 고려한 주요 IT서비스 기업들이 아예 입찰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대형 IT서비스 기업 한 관계자는 "당초 예산이 400억원 이상이었던 사업이 예산 축소로 260억원에 발주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면서 "최근 IT서비스 기업들은 수익성을 고려해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공공 사업에서의 유찰 사례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대형 IT서비스 기업들은 대기업 참여 금지 예외 사항으로 지정된 공공 정보화 사업 외에는 사업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들 기업은 공공 사업 인력을 해외사업 부문으로 재편해 공공 시장 참여를 축소시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IT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공공 정보화 사업은 수익성이나 레퍼런스(실적)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 시장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같이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외국계 IT기업들의 진출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결국 국내 공공 정보화 사업이 외국계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IBM과 한국HP, 한국오라클 등 해외 IT기업들은 공공시장 진출을 위해 인력 충원에 나서고 있으며 관련 조직도 정비하고 있다. 딜로이트와 AT커니, 엑센츄어 등의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도 공공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공공 정보화 시장 진출이 현실화 될 경우 그 파급력은 막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스템 구축의 기본이 되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솔루션 등이 다 이들 외국계 IT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개선안이 오히려 외국계 기업만 배불리는 제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일감몰아주기' 틀에 갇힌 IT서비스

IT서비스 기업들이 DNA를 바꿔가면서까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재벌'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사업 구조를 개편했지만 외부에서는 여전히 일감몰아주기 잣대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SDS의 물류 사업 진출이다.

삼성SDS의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정부 규제와 사회적 비난을 면하기 위한 회피수단으로 신사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일감 몰아주기를 신사업 진출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업 내용이 SI에서 물류로 바뀌었지 일감몰아주기라는 행태는 그대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삼성SDS 측은 자신들의 물류 사업은 IT와 물류업을 접목시킨 종합 물류서비스로 기존 물류업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고 항변한다. 삼성SDS의 물류사업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공급망관리(SCM) 기술에 물류 서비스를 접목한 '물류 공급망관리(SCL:Supply Chain logistics)'라는 설명이다.

선박이나 물류 인프라 등의 자산을 갖고 진행하는 전통적인 물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며, 삼성SDS는 IT를 통해 각 계열사들의 전 세계 물류를 효율화함으로써 이들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삼성SDS는 삼성전자 등의 일부 그룹 계열사의 해외 물류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향후 점차 규모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SK C&C 또한 지난 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여파로 새로운 사업 진출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라는 지적을 받았다.중고차 매매업체인 SK엔카(엔카네트워크) 인수 등을 통해 신사업 진출을 본격화 하는 SK C&C는 이에 대해 펄쩍 뛴다.

이와 관련,공정거래위원회는 그룹 내부거래에 대한 과세 방침을 정한 이후 세법 개정을 통해 내부 거래액이 매출액의 30%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지분 3% 이상 보유 대주주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 C&C가 이종산업 진출이나 해외시장 공략 등의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가 내부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 비중을 낮추고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고자 하기 위함이라는 의혹이다.

그러나 SK C&C 측은 "SK엔카 인수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한다.

SK C&C는 SK엔카가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 중고차 매매 인프라가 오히려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모델임을 주목하고 IT를 접목시켜 어떻게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요구한다.

실제로 SK C&C는 SK엔카의 중고차 매매 플랫폼에 고객관계관리(CRM)와 데이터베이스마케팅(DBM),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등의 IT를 접목시켜 글로벌 차원의 마케팅 플랫폼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기업 계열 한 IT서비스 기업 대표는 "주요 재벌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은 필요하겠지만 각 계열사의 전산실을 통합해 그룹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출범한 것이므로 신사업 진출을 무조건 일감몰아주기로 매도하는 것은 억울하다"면서 "IT를 통한 그룹의 생산성 향상과 경영 효율화는 IT서비스 기업들의 공로로 평가돼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중견기업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신사업

또 다른 문제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IT서비스 기업들이 저마다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견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발굴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른바 '빅3'를 포함한 대형 IT서비스 기업들은 그룹의 지원과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 및 노하우를 바탕으로 IT융복합 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비IT 분야에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시너지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견 IT서비스 기업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규제 여파로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으나 수익없는 장기적인 투자를 감수하며 해외 시장까지 개척을 개척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다.

롯데정보통신의 경우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개정으로 공공사업 본격화 계획이 무산되면서 대체제를 찾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전자정부 분야에 강점을 가진 현대정보기술까지 인수하면서 공공 사업을 준비했던 터다.

한화S&C나 동부CNI, DK유엔씨, 동양네트웍스, 코오롱베니트 등도 공공 부문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면서 실적을 쌓아왔지만 아예 공공 시장에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아시아나IDT도 주력 분야인 공항 IT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답답한 심정이다.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IT융복합 사업에 관심을 갖고 IT컨버전스 사업에 진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아직 없는 상태다. 게다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신사업에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여력이 안되다보니 상위 기업들과 그 이외의 기업들간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중견 IT서비스 업계 또한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해외 수출은 당장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해외 사업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대형 기업들이야 3년 이상의 꾸준한 투자를 통해 시장 발판을 마련한 상태지만 중견 기업들은 아직 걸음마 수준인게 사실이다.

한 중견 IT서비스 업체 임원은 "평균 5~6% 정도, 많아야 10%의 이익률을 내는 IT서비스 업체들이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해외 시장에 투자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해외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인력 체류비나 위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익이 남지 않는 '계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따른다"고 말했다.

결국 이 모두가 대안 없는 비판이 만들어낸 성급한 결론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정부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정보화 사업을 바라보고 IT서비스 기업들에게 애정 어린 격려와 지지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김관용기자 kky144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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