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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강국-중]"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SW는 국가 기간인프라…타 기간 산업에 준하는 보호와 육성 필요

수 년 전 '자바의 아버지'라 불리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세계적인 자바 소프트웨어 개발자 제임스 고슬링 이사가 방한했다.

당시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한국 시장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LG전자 등이 생산하는 휴대폰 단말기에 썬의 자바가 탑재되면서 이 회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가전에 대해 누구보다 빠른 흡수를 보이는 한국 시장은 썬의 자바 기술을 실험하고 개발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그래서 제임스 고슬링 이사는 한국 내 소프트웨어 정책 담당자를 만나고자 했다. 휴대폰을 위시해 자바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소프트웨어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는 게 썬 측의 의향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때 우리 정부는 정부 관료 중 누구 한 사람을 '소프트웨어 전문가'라고 내세우질 못했다.

그나마 정부연구기관의 원장 정도가 만날 만한 '위치'에 있었지만 만남을 성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당시 원장은 통신 분야의 권위자인 것은 맞지만,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석학과 깊은 논의를 할 정도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에 당시 정부는 물론이고, 학계 및 업계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SW 전담 부서 대폭 축소…정책 전문가는 꿈도 못꿔

현재, 이 현실은 개선이 됐을까. 외국의 석학과 독대할 만한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정부에 없다는 사실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소프트웨어 전문기관의 명맥을 유지하던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마저도 새 정부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그 간판을 내렸다. 전자거래진흥원 및 정보통신연구진흥원과 합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으로 하반기 새롭게 출범하게 되는 것.

물론 통합기관 출범은 난립한 산하 기관을 효율화하고 소프트웨어와 타 산업과의 연계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긴 하나, '소프트웨어'라는 이름이 들어간 기관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업계는 '상징의 상실'이라고 푸념한다.

국내에서 소프트웨어의 '대부'로 불리는 KAIST 김진형 교수는 "통합 기관에서는 사실상 소프트웨어에 대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며 "달리보면 이 현실이 바로 현 정부가 국내 소프트웨어에 대해 갖는 인식의 현 주소"라고 씁쓸해했다.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정부 조직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정통부 시절에는 이 산업의 정책과 지원을 총괄하는 '소프트웨어진흥단'이 있었다. 단 아래에는 정책, 협력진흥, 기술혁신, 전략SW 등 4개 팀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정통부 해체 이후 소프트웨어 관련 정부 조직은 대폭 축소됐다.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 신산업정책관 하부에 소프트웨어정책과와 진흥과, 두 개의 과가 전담하고 있을 뿐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분류됐던 디지털콘텐츠산업과와 저작권보호팀은 문화부로, 전자정부해외진출지원 기능 일부는 행안부로 뿔뿔이 흩어졌다.

빛나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제품화까지는 성공한다 하더라도 변변한 생태계 하나 조성하지 못하고 이름없는 중소기업으로 스러져버리는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은 정부의 이같은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기인한다.

한때 국내 대표 IT벤처였던 핸디소프트의 몰락은 국내 중소SW업체의 비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해외 유수 외산업체를 제치고 그룹웨어와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 분야 독보적 1위였던 이 회사는 최근 최대 수요처였던 공공기관이 등을 돌리면서 주요 수익원을 상실, 결국 오리엔탈리소스라는 회사에 인수됐다.

2000년 초반 코스닥 황금주로 부상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던 핸디소프트의 좌초는 국산 소프트웨어업체로서 순수한 '비즈니스'만으로 스스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새삼 보여준다.

◆철저하게 보호받는 '통신',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SW'

그 동안 IT 강국의 밑거름 역할을 했던 '통신 패러다임'을 벗어 던지고 과감하게 소프트웨어산업 중심으로 정부 정책이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KAIST 김진형 교수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봤자 아직도 국내 IT산업의 '주류'는 통신과 반도체 등의 '인프라' 산업이 차지하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인식과 투자가 소프트웨어로 옮겨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부족하다는 논리는 주류인 통신과 전기산업에 대한 투자와 비교만 해도 명확하다는 것.

고건 교수 역시 "국가경쟁력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소프트웨어임에도 불구, 타 산업과 비교해보면 그 지원예산과 정책 효율성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정부가 이번 추가경정예산 편성 및 녹색뉴딜을 통해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는 통신과 방송, 전기 분야를 살펴보면 일단 이 분야는 국영사업체가 존재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지분투자를 제한하고, 특정기업에 배타적인 사업권까지 허용한다.

끊임없는 정책적 지원과 연구는 물론 독점사업에 따른 높은 연봉과 임기,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소프트웨어 산업은 외국업체와의 무한경쟁이다. 최저가 입찰의 도마에 가장 먼저 올라서며, 이 분야 종사자들은 낮은 연봉에 야근, 철야가 이어진다.

실제 소프트웨어 업계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복지 수준을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 요소로 꼽고 있다.

한국의 빌게이츠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길에 들어서지만, 극심한 노동강도와 이에 상응하지 않은 대우에 지쳐 꿈을 접는 개발자의 일화는 어제 오늘 듣는 얘기가 아니다.

200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산업 종사자의 초과근로시간수는 월평균 16.6시간으로 건설업 4.7시간, 전문직 4.8시간, 금융업 5.2시간, 통신업 8.6시간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하지만 월평균급여총액은 210만원 수준으로, 금융업 2천800만원, 통신업 2천900만원에 비해 훨씬 적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는 "다른 직종에 비해 근로시간은 많은 데다 받는 임금은 훨씬 적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면 근로환경이 나은 대형 포털업체나 통신사로 이직하는게 이 분야 경력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필요한 '생태계'는 결국 정부가 나서서 조성해 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프트웨어가 지식기반사회의 국가 기간산업임이 분명하기에 타 기간 산업에 준하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서소정기자 ssj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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