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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육성, 기본부터 점검하자-2] 생활속 스며든 '복제' 유혹


졸업 논문을 준비중인 경영학과 대학원생 A씨는 'SPSS' 프로그램이 급하게 필요했다. SPSS는 컴퓨터를 이용해 각종 자료를 분석하는 통계 전문 프로그램. 통계작업이 필수인 경영학과 대학원생에게 SPSS는 없어서는 안되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A씨는 친구 B씨에게 SPSS 최신 버전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B씨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A씨에게 건넸다. B씨의 USB에는 SPSS 최신 버전은 물론,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SPSS나 포토샵 등은 종종 이용하기 때문에 아예 휴대하고 다닌다는 것이 B씨의 설명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PC방이나 학교 전산실 등에서 바로 설치해 사용하기 위해서다. B씨로부터 SPSS 프로그램을 얻은 A씨는 연구실 PC 3대에 연이어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대학생 D씨는 학교 전산실에서 과제를 작성하던 중 '한글 2007'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D씨는 곧바로 메신저에 접속, 온라인 상태에 있는 친구로부터 한글 2007 프로그램을 구했다.

평소 D씨는 한글, 워드 등 SW 프로그램이 필요하면 메신저에 접속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송받거나, P2P 사이트를 찾는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SW를 돈주며 구입하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SW 불법복제 "3분이면 OK"

A와 D씨 사례는 대학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한글, 워드 등 사용률이 높은 오피스 제품은 물론 통계 패키지인 SPSS, 공학용 SW에 이르기까지 '정품'을 사용하는 학생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정품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불법복제 SW 사용이 일상화됐다.

최근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SW 입수 경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P2P, 웹하드 등을 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컴퓨터 사용이 잦은 대학생과 일반인 5명을 상대로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SW를 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본 결과 평균 3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실험에 참여했던 최동렬(27세, 대학생)씨가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프로페셔널 버전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분. 평소 애용하던 웹스토리지 업체의 주소를 주소창에 입력한 뒤 해당 사이트에 로그인한 최씨는 SW 카테고리에서 해당 제품을 바로 내려받았다.

해당 게시판에는 윈도XP, 윈도 비스타 등 운영체제(OS)가 버전별로 보기좋게 정렬돼있다. 최씨가 20만~50만원 상당의 SW를 다운로드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불과 300원이었다.

◆"대학가, 불법복제 장"

이처럼 대학가는 '불법복제 SW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제가 성행하고 있다. 대학교 내 PC실에는 정품 라이선스가 부여되지 않은 제품이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SW업체들 역시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W업체들은 선뜻 정품 전환을 유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학이나 공공기관에 단속을 나갔다간 적잖은 잠재 고객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활발한 인터넷 세대들에게 과도하게 '정품 강요'를 한 것으로 찍힐 경우엔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물론 사용자들 역시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사용자들은 SW 구매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로 '가격'을 꼽는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가 2007년 컴퓨터 사용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SW정품사용실태와 의식조사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6%가 SW불법복제 이유로 'SW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복제 SW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27.9%)‘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실제 SPSS와 같은 통계 프로그램의 가격은 버전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한다. 대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는 SPSS 풀 패키지 한글 버전의 경우 2천만원이 넘는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가격임에는 틀림없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SW 구매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생 최모씨는 "불법복제SW 사용이 줄지 않는 것은 턱없이 높은 SW가격 때문이기도 하다"며 "사용자는 높은 가격 때문에 SW를 구입하지 않고, SW업체는 판매율이 낮다 보니 수익성 차원에서 가격을 높이 부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높은 가격·낮은 판매율, 불법복제 악순환"

물론 SW는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고, 무형의 가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외산 업체는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 비용 책정으로 투자에 대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SW업체는 투자수익률(ROI) 관점에서 SW 가치를 명확히 평가하고,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펼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중소SW업체 관계자는 "국내 SW업체는 불법복제SW 단속에 적극 나설만큼 시간적·경제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며 "외산·국산 구분없이 정품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가격이 비싼 일부 외산 SW업체 영향으로 저렴한 국산SW 업체가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현재 성행되는 불법복제SW 상황을 반드시 비싼 가격 탓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한국MS는 지난 11월 대학생들의 오피스 정품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파워포인트, 액셀, 워드 등의 기능이 포함된 80만원 상당의 '오피스 얼티미트 2007' 제품을 5만5천500원에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고가의 SW 가격으로 정품 구입을 망설이는 대학생에게 할인 혜택을 줘 정품 사용을 유도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프로모션은 실패로 끝났다.

한국MS 백수하 이사는 "80만원 상당의 제품을 5만원으로 낮춰 제공해도 정품 구매율이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다"며 "가격보다 더 큰 문제는 SW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소비자 인식"이라고 말했다.

◆"불법복제=범죄, 지적재산권 교육 필요"

SW업체도 정품 전환을 위한 자구책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학생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SW를 구매할 수 있도록 프로모션을 지속 실시하는 한편, 예산의 부담을 느끼는 교육·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용자당이 아닌 별도의 라이선스 체계를 제시하는 것.

SPSS코리아는 사용자당이 아닌 동시접속자수를 제한해 설치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도비는 지난 9월부터 일부 교육청과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동안 '디자인 프리미엄' 제품을 사용자수와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PC 김현숙 팀장은 "SW불법복제가 쉽게 이뤄지다 보니 SW불법복제를 범죄로 인식하는 이용자가 많지 않다"며 "초등고등학교부터 SW지적재산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체계적으로 실시해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소정기자 ssj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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